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Jun 08. 2022

외벌이, 지출을 줄여야 산다.

3인 가족, 15만 원으로 일주일 살기

 전업주부가 되고 가장 아쉬운 순간은 돈이 필요할 때다. 신랑이 매달 주는 월급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림을 꾸려나가기는 하지만 같이 벌던 시절보다 늘 빠듯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지인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 책도 내고 강의도 다닌단다. 안타깝게도 그런 쪽으로는 재주가 없다.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비를 줄여보는 일뿐이다. 그런데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몸이 피곤하고 귀찮은 날은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 있어도 배달어플을 찾게 된다. 각종 특가상품, 1+1 세일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대충 밥만 지어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으로 때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혼자만의 의지로 소비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3인 가족, 15만 원으로 살기 인증 클럽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모집 글이 반가웠다. 3인 가족 기준 일주일 동안 15만 원으로 살기 모임이었다. 장보기, 외식, 간식은 물론 주말 나들이 비용, 생활용품 구입비까지 포함이었다.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하루 2만원꼴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매일 지출내역을 가계부에 기록한다. 기록한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대화창에 인증한다. 지출액을 3회 이상 초과할 경우, 조용히 퇴장한다. 단, 가족행사, 여행, 기념일 등이 있을 때는 예외로 한다. 미션을 시작한 첫 주에는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써봤다. 대신 돈을 쓸 때마다 가계부 어플에 꼼꼼히 기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일주일은커녕 3~4일 만에 벌써 15만 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어떤 이벤트가 있었거나 배불리 외식을 한 것도 아니었다. 15만 원이 이렇게 우습게 사라지다니. 사용내역은 대체로 놀이터에서 놀다가 또는 하원하는 길에 아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생각 없이 사 준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수 같은 비용이었다. 가끔 내가 마신 커피값과 슈퍼에서 장을 본 것이 다였다. 첫 주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다음 주에는 꼭 성공하리란 마음으로 대책을 세웠다. 일주일에 15만 원으로 살려면 생활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먼저 하원 후에 놀면서 쓰는 간식비를 줄여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용돈 시스템을 도입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직 100 단위가 넘어가는 숫자를 읽지도 못하는 7살 아이에게 용돈을 준다는 게 고민이 되긴 했다. 얼마를 줘야 하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 돈이라고 쉽게 쓰는 아이를 보며 이번 기회에 돈의 소중함을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어렵지만 한번 해보기로 했다. 액수는 일주일에 5,000원으로 정했다. 간식이나 편의점, 문방구에서 쓰는 돈은 용돈에서 해결하라고 일러주었다. 현금으로 5,000원을 주고 아이가 직접 계산하게 했다. 물건을 구입하고 나면 잔돈을 보여주고 앞으로 며칠 동안 이 돈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간식비를 주 5,000원(평일만 계산)으로 고정시켰다. 

 평일에는 최대한 외식이나 배달을 자제하고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삼시 세 끼를 차려내야 하는 주말이면 점심은 으레 외식을 했었는데 금액을 맞추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외식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반대로 점심까지 집에서 챙겨 먹고 나들이를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2주 차 주말은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시세끼 집밥을 해 먹었다. 그래도 나들이를 나가기에는 잔액이 충분하지 않았다. 요즘 물가 살벌하다. 근처 공원만 나가 간단한 간식거리만 사 먹어도 1~2만 원은 금방이었다. 오락실이 있는 가까운 쇼핑몰로 향했다. 만원으로 실컷 게임을 하고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요일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지지고 볶으며 집에서 뒹굴거렸다. 그렇게 2주 차는 149,000원으로 간신히 미션을 성공했다. 

 3주 차에 들어서자 이제는 나름의 소비계획이 생겼다. 아이 용돈 5,000원을 제외하고 주말 나들이와 외식을 위해 6만 원 정도를 남기고 나니 8만 5천 원 정도가 있었다. 이 비용으로 반찬가게를 이용하든 직접 조리를 하든 배달을 시켜먹든 일주일 식사를 챙겨야 했다. 마치 조리사가 된 듯 일주일치 식단을 짜 보게 되었다.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해놓고 포스트잇에 조리 가능한 메뉴들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적어둔 메뉴들을 모두 먹을 때까지 장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것들을 바꿔가며 15만 원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중도 포기자 속출! 포기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모임이 진행될수록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단체 채팅방을 퇴장했고 어떤 사람은 남아계신 분들이 정말 훌륭하시다며 부끄러운 듯 퇴장했다. 사실 나도 고민했다. 15만 원으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웠다. 당장 운동 후에 사 마시던 커피를 줄여야 했고, 그마저도 바닐라라테를 주문하려다 잔액을 확인하고 아메리카노로 변경해야 했다. 냉면을 먹으러 가서도 곱빼기를 시키려는 남편에게 눈치를 주어야 했고 만두도 시키면 안 되냐는 아이의 말에 대답을 망설여야 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달 만에 조용히 단체 채팅방을 나왔다. 

 그 모임에서 한 번도 액수를 초과 사용한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비법이 궁금해서 가만히 지출내역을 살펴보니 물건을 쟁여두는 법이 없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서도 나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언제든 꺼내먹으려고 만원 어치를 사 온다면 그 사람은 아이 꺼 하나, 본인 꺼 하나 3,000원 지출이 전부였다. '사놓으면 다 먹게 되어 있어!'라는 마음으로 장을 볼 때도 이것저것 사놓는 나와 달리 그 사람은 콩나물, 두부 5,000원 이렇게가 다였다. 한 번은 주말 나들이 때문에 비용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주말은 주로 어떻게 보내냐고 물었더니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놀이터에서 놀다 온다고 했다. 심심하면 마트나 쇼핑몰에 가서 점심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뭐라도 하나 사 오는 나와 생활모습 자체가 달랐다. 결국 지출을 줄인다는 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15만 원으로 살기는 실패했지만 이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이 있으니 첫째는 아들에게 용돈을 주고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가계부를 쓰면 가계 경제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안 쓰는 게 버는 거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쓰는 게 버는 거라고 한다. 씀씀이에 인색한 사람을 두고 구두쇠, 스크루지라고 손가락질하다가도 노후에 그들이 모아놓은 돈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쓸 때는 써야지'라지만 그렇다면 '쓸 때'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답은 없는 거겠지. 각자 사는 형편이 다를 테니까. 이것 역시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핵심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다시 가계부를 써봐야겠다. 우리 집만의 '쓸 때'의 원칙을 세우는 것, 그 '쓸 때'를 위해 총알을 준비해놓는 것, 그것 또한 외벌이 남편을 위한 아내의 배려일 테니까.    




*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통장쪼개기 - 총알 준비를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