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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16. 2022

엄마의 자기 주도 학습

초등 입학 전, 마지막 1년

     

 7살. 초등 입학을 앞두고 엄마의 마음이 가장 초조해지는 시기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여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전처럼 유치원에 가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성향이라면 태권도나 미술 같은 예체능 학원도 한두 개쯤 거부감 없이 다닐 거다. 크고 작은 일들이야 계속되겠지만 그건 아이를 키우는 내내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엄마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앞으로 1년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일과 빨라지는 하교시간을 생각하면 마지막 유아기를 보내는 7살, 이 시기는 전업맘에게도 놓칠 수 없는 황금기다.


 친구 세영이와 나는 6살까지 같은 국공립유치원을 보냈다. 언제나 이른 하원과 긴 방학이 고민이었지만 서로 의지하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런 세영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7살 때는 어린이집으로 옮기려고 해. 둘째랑 같은 어린이집으로."

"잘 다니고 있는 애를 왜 옮기려고?"

"초등 들어가면 엄마가 더 바빠진다잖아. 둘 다 어린이집에 넣어놓고 마지막 1년은 좀 쉬려고."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 세영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기관을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이사로 나는 사립유치원으로 친구는 어린이집으로 기관을 옮겼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아이가 힘들어할까 싶어 한 달 정도는 일찍 하원 시켰다. 뜻밖의 제안을 한 것은 아이 쪽이었다. 


"엄마, 나 내일부터는 방과 후도 하고 올래. 선생님이랑 그렇게 약속했어."

"왜? 네가 힘들면 꼭 안 해도 돼."

"아니야, 친구들이랑 놀고 4시에 올게."


 놓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이는 결심한 듯 말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별 탈없이 4시까지 유치원에 머물렀다. 당장 하원 시간이 늦어지니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자유시간이 많은 적이 있었나? 


 학창 시절에는 죽어라 공부를 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7시 30분에 시작하는 0교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도 자발적으로 독서실에 갔다.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가 쪽잠을 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일에 익숙했다. 대학 때는 어땠나. 신입생의 설렘도 잠시, 하루가 멀다 하고 최악의 취업난을 알리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고 선배들의 잇따른 취직 실패담에 겁을 먹었다. 일찍이 스펙 쌓기에 열중했다. 영어는 기본, 제2외국어, 봉사활동, 인턴십, 어학연수 등등. 바쁘게도 살았다. 직장에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근, 주말근무를 밥 먹듯이 했고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자기 계발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혼, 출산, 육아까지.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보낸 적이 있기나 할까?

      

 그래서일까?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내 시간이 생기자마자 나는 되려 불안해졌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이것저것 정보를 찾았다.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이 아니라도 좋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공부를 하기로 했다. 당장 목돈을 드려 꼭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취직을 위해 따야만 하는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이 시작되다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은 성인이 된 후에 완성되는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에는 아이를 위해 엄마 자신이 책을 읽기 시작하거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글들이 자주 보였다.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공부다. 육아하며 단절된 경력의 공백을 메우고자 자격증을 준비하는 엄마들도 적지 않았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그녀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글들을 보고 있자니 조바심이 났다. 일단 뭐라도 시작하자는 심정으로 아무거나 해보기로 했다. 민간기관에서 운영하는 자격증 사이트에 들어가 관심이 가는 강의를 닥치는 대로 골라 담았다. 그중 하나가 '자기 주도 학습지도사'. 코로나에 의한 갑작스러운 온라인 학습 환경에 모두가 허둥지둥하던 때였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럴 때일수록 자기 주도 학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 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들은 위기에 강하다고. 기왕이면 우리 아이가 상위권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겠다. 그 길로 바로 자격증에 도전했다.   


 오랜만에 강의를 듣고 있자니 설레었다. 시험에 대한 압박이 없었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채우는 지적 호기심 때문인지, 육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인 건지 농담 한번 하지 않는 선생님의 강의가 재미있었다. 스스로 받아 적고 밑줄을 치며 끝까지 달렸다. 자격증 발급을 위해 시험을 치르던 날,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 좋았다.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모니터 속에 합격이라는 단어를 볼 때의 기쁨도 생각보다 컸다.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자기 주도 학습의 의미를 강의를 들으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실천하며 느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강의 수강은 무료였지만 자격증을 받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했다. 신청하지 않았다. 자격증을 가지고 공부방을 차리거나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그저 궁금한 것을 찾아 공부했고 좋은 결과를 얻은 성취감, 이걸로 충분했다. 비슷한 시기 세영이는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조별과제도 있어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우편으로 자격증이 도착했는데 우편물을 뜯어보지도 않았단다. 기쁘지도 반갑지도 않아서. 그제야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엄마의 자기 주도 학습,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세영이도 나도 무언가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지 자격증이 목적은 아니었던 거다. 그게 자기 주도 학습사든 독서지도사든 뭐였든 그저 배우고 익히는 게 좋았던 것. 이런 마음으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했다면 지금 다른 위치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친구는 아이를 낳고 살을 빼려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가 강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본인도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단다. 앞으로 키즈 필라테스 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그렇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 힘에 의해 시작한 일은 에너지가 넘친다. 강력한 내적 동기가 있으니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려도 계속하게 된다.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시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엄마라서 포기해야 했던 일에 갇혀있지 말고,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리고 시작하자.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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