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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17. 2022

엄마가 글을 쓰는 이유

외로운 사람의 글쓰기

 글을 쓰지 않아도 쌀을 씻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내가 글을 쓴다고해서 기뻐하며 반겨 줄 이도 없고 내가 쓴 글을 가족들이 읽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처음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랐을 때 남편은 함께 축하해줬지만 정작 내 글을 읽지는 않았다. 두번째 메인에 올랐다고 자랑했을 때는 축하도 뜨뜻미지근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쓰고 싶어졌을까? 누구 말대로 이 시간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학원비라도 벌텐데 굳이 돈도 안되는 글을 쓰기로 한걸까? 


재미있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말주변이 없다. 맛깔나게 말하는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누구보다 많았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일상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 하나에도 스스로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관찰하고 이유를 따져보는 취미를 가졌다. 그런 생각을 남들과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재미있게 말할 능력이 없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쌓여가고 어디에라도 발설을 해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온라인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소심하게 가입인사를 나누고 짧게나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가끔 올리는 글에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면 그게 그렇게 기뻤다.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또 그 사람에게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이다.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글과 생각만으로 서로의 닮은 점을 확인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때 즈음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가 책을 썼다며 에세이집을 내게 건넸다. 온라인 카페에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 중 몇몇도 출간 소식을 알렸다.      


나는 그동안 뭘 했던 거지?’      


 그러니까 내가 쓰고 싶었던 이유는 부끄럽지만 질투심이었다.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뭔가를 보여주겠어!' 하는 뭐 그런 마음이었다. '여러분 놀라셨죠? 제가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만 하면서 노는 줄 아셨죠? 사실은 제가 글도 쓴답니다. 짜잔~' 유치하지만 그 마음이 나를 쓰게 했다. 최소한 시작은 그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음은 나를 쓰게 했지만 결국은 쓰지 못하게 했다. 잘 써야 한다는 마음, 모두를 놀라게 만들만한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 그 부담감은 기껏 완성한 글을 삭제하게 만들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게 했다. 다시 노트북을 접었다. 쓰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해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8년간의 주말부부를 청산하고 남편을 따라 낯선 지방으로 이사를 했다. 온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열흘 가까이 격리도 했다. 누구에게라도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낯선 동네에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없었다. 오며 가며 가벼운 대화를 나눌 사람도 드물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한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연락이 닿은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아니면 내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멋쩍은 마음이 들어 “내가 너무 말이 많았지. 미안해.” 하며 서둘러 끊어야 했다. 그들도 할 일이 있고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어디에라도 마음껏 나의 소리를 털어놓아야 했다. 그래야 후련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펴고 식탁에 앉았다. 한글문서를 열고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말이 아닌 글로 써 내려갔다.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쓸 때는 키보드 자판 소리에도 분노가 담겼고 감동적이고 고마운 일을 쓸 때는 타자를 치는 손가락도 한결 부드러웠다. 아낌없이 쏟아냈다. 쏟아내면 낼수록 할 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럼 또 열심히 썼다. 남편, 엄마, 친구 누구에게도 못한 말을 노트북에 대고 했다. 그 녀석은 말없이 다 들어주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로워서 쓰는 글 

      

 음악으로 미술작품으로 춤으로 연기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는 예술가를 동경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예술적 재능이 없다. 대를 거슬러 아무리 올라가도 예술가의 피는 전혀 흐르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굳이 글을 써야하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이유는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잘 할지도 몰라. 엄마는 문학소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셨으니까. 60대에도 손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는 것이 취미인 분이니까. 재능은 없어도 가능은 할지도 몰라. 나는 그런 엄마 딸이니까.'


 그렇게 어제도 쓰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거다. 마음이 울적할 때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 때 불현듯 옛날 일이 떠올랐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전원을 켜고 쓸 거다.     

 

 어쩌면 그 힘의 원천은 외로움이다. 내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하는 하소연이다. 그게 무엇이든 엄마는 돈도 되지 않지만 매일 쓴다.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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