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Jun 22. 2022

생일 축하의 의미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하하는 일.
시험에 합격해서 승진을 해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어떤 행동에 대한 대가가 아닌 오로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축하하고 감사해하는 일. 
그게 생일 축하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생일 축하를 통해
나의 존재가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기념일을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결혼기념일 같은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잊지 않고 꼭 챙기려고 하는 날은 "생일"이다.


친정에서는 우리 집만의 생일 문화가 있었다. 아침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먹고 점심에는 오래 살라는 의미로 면요리를 먹었다. 주로 짜장면을 시켜먹거나 엄마가 해주는 국수를 먹는 일이 많았다. 저녁에는 작은 케이크라도 사 와서 촛불을 켜고 가족이 함께 모여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대단한 선물을 받거나 큰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생일을 축하받았다.


시댁은 달랐다. 남편은 부모님의 생신이 언제인지 묻는 내 질문에 엉뚱하게도 주민등록증 번호를 댔다.


"정말 그날이 생신이 맞아? 보통 주민번호랑 진짜 생신이 다르실 텐데."


남편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린다. 역시나. 남편이 기억을 더듬어 어렵게 알려 준 날짜는 틀렸다. 남편은 숫자에 관한 기억력이 매우 좋아서 전화번호, 날짜, 물건의 가격 등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왜 부모님의 생신은 정확히 몰랐을까?


남편 집에서는 한 번도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의 생신은 물론이고 자식들의 생일도 축하한 적이 없다고. 사실인지는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편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어쩌면 시부모님도 나름대로 신경 써서 미역국도 끓이고 용돈도 가끔 주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남편 기억 속에는 그런 사실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은 사실보다는 감정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남편에게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받았다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남편도 시부모님의 생일을 특별히 챙기지 않는다. 내가 일부러 달력에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도 못하고 넘어가는 것은 예사고 오늘이 생신이라고 귀띔을 해주어도 시간을 내어 축하 전화를 하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시부모님도 그러려니 하시는 눈치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다른 기념일을 챙기는 것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일은 아무 조건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하하는 날이다. 태어나기만 했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 자체를 축하받는 날이다.


그래서 매년 아이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다짐한다. 그 날 만큼은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 자체를 마음껏 축복하고 사랑해주자고.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생일 축하해.”라는 말과 함께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달한다. 일부러 말하기에는 조금 낯 뜨거운 말이지만 생일을 핑계 삼아 말해보는 것이다.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다는 기쁨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무적으로 알게 된 사람이나 오며 가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생일을 알리 않는다. 적어도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만이 알 수 있고 또 축하해줄 수 있는 날이 생일이다.


요즘은 휴대폰에 전화번호만 저장되어 있으면 그 사람의 생일을 저절로 알려주고 친절하게 알림까지 해주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사람의 생일을 챙기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 알림을 보고 ‘어! 오늘 00이 생일이었네.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시간을 들여 축하를 해주게 된다. 그러니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특별히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나 또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일은 나의 가까운 주변 사람이 챙겨주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축하받을 수 없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매년 다가오긴 하지만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축복받을 수 없는 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념일이기에 나만 축하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그 소외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나의 존재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나의 존재의 이유는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어쩌면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거창한 파티를 준비하거나 값비싼 선물, 최고급 한우로 끓인 미역국을 준비하라는 뜻은 아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은 사실보다는 감정을 기억한다. 마감세일을 하는 미국산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을 끓일지언정 생일상을 내주는 사람의 손에 온기가 있다면 건네는 눈빛에 사랑이 있다면 그건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이 될 것이다. 매년 거창한 파티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우리 집 만의 사소한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생일날 저녁은 무조건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한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면 좋을 것 같다.


갑자기 생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축하인사를 건네는 카톡 알림을 보며 생각했다.

나를 기억해주고, 자신들의 시간을 내어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 정도면 나 꽤 잘 살았구나.

고맙다. 나의 생일을 축하해준 소중한 가족, 친구에게.

오늘 하루만큼은 나 자신이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보내야겠다.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글을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