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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23. 2022

아빠는 왜 건강식품에 집착할까?

 아빠는 왜 그렇게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드셨을까. 맛도 없는데. 

 엄마는 왜 의학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챙겨 보고 빼곡히 받아 적으셨을까. 


"엄마, 그만 좀 봐. 저런 거 다 광고야."

"또 홈쇼핑에서 산 거지? 이런 걸 먹으면 진짜 효과가 있기는 해?"


 엄마를 보며 잔소리하던 그때의 나는 몰랐다. 


 친정 집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액자가 하나 있다. 어디서 누가 사 온 건지도 알 수 없다. 현관문을 열면 촌스러운 명언이 거실 벽면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줄이야. 20대의 나는 미처 몰랐다. 

      

 굳이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당연히 건강했으니까. 가끔 감기에 걸려도 하루 푹 자고 나면 괜찮았다. 언제부터인가 좀 이상하다. 하루를 꼬박 앓아도 끝이 안 난다. 지긋지긋한 두통도 진통제 하나면 해결이었다. 이제는 두 알, 세 알을 연거푸 먹어도 효과가 없다. 라면, 떡볶이, 치킨, 피자를 달고 살아도 소화가 됐었다. 지금은 한 끼만 과식을 해도 위는 강력히 저항한다. 출산 후 생긴 손목 통증은 수시로 존재감을 밝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영양제를 먹지'

'보약을 지어먹어야 하나'


 건강이란 단어가 친근해졌다. 나이를 먹었구나.


 다른 건 몰라도 잔병치레는 좀 하는 편이다. 찬바람 불고 환절기 오면 비염, 음식 잘못 먹으면 알레르기, 그날만 되면 찾아오는 두통, 양치질하다가도 꾸역하는 역류성 식도염. 몸이 아픈 거야 약 먹으면 나아진다. 오래 걸려도 나아지긴 한다. 그런데 아프다는 핑계로 남편에게 짜증내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후회에는 약도 없다.

    

 어제가 그랬다.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지만 두통은 여전했다. 온몸의 신경이 빨리 아이를 등원시키라고 명령한다. 어서 침대에 누우라고. 아이가 내 마음을 알리 없다. 씻지 않고 빈둥거린다.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며 서랍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 참다 참다 소리를 꽥 질렀다. 입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등원한다. 몸은 천근만근. 잠시 누웠는데 머리가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헷갈린다. 


 참 이상하다. 아파도 배는 고프다. 무턱대고 아무거나 먹었다가 탈이 나면 더 큰 일이다. 


"아플 때는 된장을 먹어야 돼. 그래야 소화가 잘돼."  


 그립다. 엄마의 된장국. 현실은 배달어플을 뒤져 죽집을 검색한다. 배달비가 왜 이렇게 올랐지. 그냥 밥을 차릴까 생각하다 이내 포기한다. 억지로 몇 숟가락 떠먹고 다시 약을 먹는다. 엉망이 된 집안이 눈에 띄고 한숨이 나오지만 못 본 척한다. 몸을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하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다른 엄마들과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도 내키지가 않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어김없이 마주친다. 괜찮은 척 인사를 나누고 웃어 보인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괜히 아이에게 또 화를 낸다. 


"빨리 들어가. 엄마도 좀 쉬게."     


 과자, 아이스크림, 사탕, 초콜릿. 줄 수 있는 모든 간식을 꺼내 준다. 곁에 누워 최대한 시간을 벌어본다. 아픈 엄마에게도 놀아달라 매달리는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틀어준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헷갈린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그때부터 목표는 딱 하나. 빨리 아이를 재우는 것이다. 아이는 그런 날에는 되려 잠들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이제 좀 자라고 제발. 큰소리에 흠칫 놀라 그제야 이불을 덮고 눕는다. 잠든 아이의 얼굴이 괜히 슬퍼 보인다. 슬픈 꿈을 꾸고 있을 것만 같다. 그토록 고대하던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빨리 잠이 들면 좋으련만 복잡한 마음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는 반드시 건강해야 한다.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책임이다.


 아이는 어제도 말을 안 들었다. 태어나서 줄곧 내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제의 나는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았다. 오늘의 아이가 짜증 나는 건 내  탓이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변함없이 눈치가 없었다. 그런 남편이 유난히 밉게 보이는 건 내 탓이다. 그에게도 죄가 없다. 내가 나를 보살펴야 한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도록.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꾸준히 운동하며 체력도 키우고 영양소를 고려해 골고루 챙겨 먹고. 성실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건강을 지켜야 한다. 어른에게는 건강도 책임이고 의무다. 


 이제야 왜 그토록 아빠가 건강식품을 챙겨 먹고, 엄마가 의사만 나오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펜을 들었는지 알 것 같다. 나 하나 아프고 끝이 아니다. 내가 아프면 아이도 남편도 가족도 모두가 고생이다. 모든 엄마, 아빠들이여 최선을 다해 건강하자.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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