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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27. 2022

이렇게 말하면 꼰대 같을까?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한 가지

성실해라. 일과 삶의 균형을 주장하고 YOLO(You Only Live Once)를 인생 모토로 사는 세상에 성실하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꼰대 같을까. 그럼에도 아들에게 단 하나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성실한 태도다. 


장마가 시작된 어느 여름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울리고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차에 아이를 태우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순간 집에서 느낀 빗소리는 예사였음을 깨닫는다. 유치원까지 가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비는 쉴 새 없이 창가에 꽂힌다. 


"엄마, 빗소리 때문에 엄마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이런 비는 처음 봐."


정말 그랬다. 차를 세우고 50m 앞 유치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신발이며 바지가 온통 젖었다. 아이에게 교실에 들어가 양말을 갈아신으라고 일러두고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쉴 걸 그랬나.'


아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일상을 산다. 젖은 우산을 접으며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마을버스기사는 눈발을 헤치고 언덕을 오른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도 택배기사는 늘 같은 시간에 벨을 누르고 천둥번개가 쳐도 피자는 배달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등교하는 길은 사실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발레를 전공하는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여름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유명한 해외 발레학교 교장이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수업을 하던 교장은 뜻밖에 제안을 한다. 2명 정도를 장학생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장학금은 물론 기숙사도 제공해준단다. 보통은 국제 콩쿠르에 나가 적어도 10위 권 안에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교장은 특정 학생을 콕 집었다. 타고난 조건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키가 크고 팔, 다리도 길고 얼굴은 작고 우아한 학생. 누가 보아도 천상 발레리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아이는 유학길에 오르지 못했다. 수업 내내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교장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유학의 기회가 생길 있다고 귀띔해주었지만 아이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학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유명 학교장에게 배움을 받는다는 것이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닌데 소극적인 태도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결국 교장은 다른 학생 2명을 선발했다. 최종 선발 기준을 묻자, 수업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와 지적을 바로 수용하고 고치려는 의지 두 가지를 뽑았다. 타고난 조건이나 재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사람은 성실하게 끝까지 계속한 사람이라고. 


맞다. 얼마 전 돌아가신 송해 선생님만 보아도 그렇다. 고령의 연세에도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으셨다. 그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세련되고 멋진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생의 여러 고난 속에서도 하나의 프로그램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이어온 것. 그 태도 때문일 거다.  


요즘에 와서는 성실이라는 단어가 어딘지 촌스럽다. 고리타분해 보인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존경받는 사람 중 성실하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개성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예술분야에서조차 그렇다. 성실하게 꾸준히 하지 않으면 한 때 반짝이던 스타로 금방 빛을 잃고 만다. 타고난 재능이 90이라고 한들 10의 노력이 없다면 재능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성실함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지나간 삶에 후회 없도록 내가 남긴 발자취가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 항상 적혀 있던 말이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세상 재미없게 사는 사람 같아서. 하지만 마흔을 앞둔 지금, 성실하게 살아서 참 다행이다.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화려한 이벤트와 재미있는 일은 극히 일부분이다. 지루한 일상이 훨씬 많다. 그런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는 어느 순간 달라진 위치에 서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당장은 따분해 보여도 그런 하루가 모여 굳은살이 생기고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된다. 그 지루한 일상을 묵묵히 견딘 사람에게 언젠가 기회가 온다. 


엄마도 그렇게 믿으며 오늘 하루를 견디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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