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뭐 되고 싶어?” , “꿈이 뭐야?”
왜 어른에게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까?
"꿈은 무슨. 먹고살기도 바쁜데."
먹고살기 바빠도 꿈을 꾸면 안 되는 걸까? 나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꿈이 있다. 어릴 때 꾸던 꿈과는 차원이 다르다. 막연하게 '방송국에 취직할 거야,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같은 꿈이 아니다. 어른이 꾸는 꿈은 소박할지언정 보다 구체적이다. 오늘은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당장은 허무맹랑하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 해도 괜찮다. 글은 나를 욕하지 않을 테니까.
목표를 세우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어른의 삶
전업주부가 되고부터는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다. 학생 때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 대학 때는 취업이 목표였고 직장에 다닐 때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왔건만 아쉽게도 전업주부의 삶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어렵고 달성하기는 더 어렵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식탁에 앉아 우아하게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쌓여있는 설거지, 세탁기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빨래, 제멋대로 구겨진 이부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 순간 집안일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고 '책은 내일 읽어야겠다' 해버리는 게 일상이 됐다. 다이어트를 하기로 한 결심은 더 쉽게 무너진다. 나는 닭가슴살에 샐러드만 먹어도 가족에게는 고기를 구워줘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실패가 반복되다 보니 자신감도 떨어졌다. ‘어차피 해도 안될 거야’, ‘이대로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매일 같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나 홀로 한 결심은 모래성보다 쉽게 무너지고 새롭게 세운 목표는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실패할 때 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실패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한다. 왜냐고? 나에게 목표가 없는 삶이란 표류하는 배와 같았다.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누군가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이 불안했다. 이대로 가다가 어딘가에 닿긴 닿는 것인지 닿는다면 그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나를 괴롭혔다.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단조롭지만 팍팍한 주부의 삶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속마음을 내비치니 누군가는 말했다.
"얘가 배부른 소리 하네. 그럴 시간에 아이 학원비라도 벌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지 않니?"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감히 외벌이로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아직은 아이가 어려 돈 드는 일이 적다지만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할 아이를 생각하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차피 끊어진 경력이라면 새로 시작할 일은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다. 어쨌든 남편이 회사생활을 견뎌주고 있어 내가 팔자 좋게 꿈 타령하고 있는 것은 맞으니까. 돈을 많이 벌어와서가 아니라 최소한 생계 고민을 할 필요는 없게 해 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고마운 남편을 생각해 가족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싶지는 않다. 아이 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되고자 영어공부를 한다거나 가족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고 싶어 요리를 배우는 것도 좋은 일지만 목적이 타인에게만 있으면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애당초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인생도 찾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어공부를 하고 요리를 배우더라도 그 목적이 가족이 아닌 나의 만족이었으면 좋겠다.
철없는 아줌마 혹은 팔자 좋은 아줌마의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는 3년 안에 발레 프로필을 찍어보는 것이고, 둘째는 출판 계약을 해보는 일이다. 여전히 돈이 되는 꿈은 아니라 미안하다. 첫 번째 꿈은 돈이 되기는커녕 돈을 들여야 하는 꿈이고, 두 번째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이뤄진다 해도 큰돈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바라고 있다. 간절히. 내가 아이 학원비를 아껴 발레학원을 등록하고 살림할 시간을 줄여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내 마음을 울린 드라마의 명대사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중에서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