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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14. 2022

전업맘의 인간관계

- 세상 가장 어려운 관계, '아이 친구 엄마'

직장인의 최대 스트레스 인간관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는 '인간관계'였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사의 이야기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매일 웃으며 얼굴을 마주하는 일, 업무적으로 맞지 않는 후배와 계속해서 소통해야 하는 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사람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다. 회식, 워크숍, 협력사와의 식사자리 등 업무 외적으로 인간관계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특히 내향형 인간에 술도 못 마시는 나는 인간관계가 더 어려웠다. 회식자리에서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고 분위기를 깨지 않는 가벼운 화제를 찾기도 어려웠다. 한껏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고성이 오가던 지난밤 회식.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를 갖춰 출근하고 함께 해장을 하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직장 내 회식도 줄고 재택근무도 보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코로나의 끝자락에서 남편의 술자리가 부쩍 많아진 걸 보면 직장인에게 술자리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얼마 전, 재택근무를 끝내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았는데 결과가 흥미로웠다. 재택근무 종료에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45.3%였는데 그 이유 중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걱정돼서(26.0%) , 회식자리가 늘어날 것 같아서(18.2%)와 같이 인간관계 스트레스에 대한 우려가 44.2%나 되었다. 


 이 정도면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도 회식도 없는 전업주부는 감사해야 하는 걸까? 


전업맘도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 스트레스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역 맘카 페나 육아맘들의 커뮤니티에 단골로 올라오는 고민 주제 중 대표적인 것이 ‘아이 친구 엄마’ 다. 아이 친구 엄마는 말 그대로 아이를 매개로 만난 관계를 말한다. 주로 아이들끼리 친해서 혹은 아이와 같은 기관에 다녀서 알게 된 관계들이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학군이 같을 경우 학교, 학원까지 관계가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동네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내 마음대로 안된다.


 ‘이런저런 집안 사정까지 시시콜콜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내 험담을 하고 다니더라.’라든지 ‘아이가 00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어린이집 때부터 친한 엄마여서 이야기하기가 껄끄럽다’ 등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복잡한 관계.


 주변에서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크고 작은 사건도 겪을 대로 겪은 엄마들은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에 소극적으로 되는 면이 있다. 등 하원 길에 매일 만나는 엄마지만 간단한 목례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먼저 인사를 건네도 '네~'하고 차갑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는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관계도 있다. 


 어쨌거나 전업주부의 인간관계가 직장인과 다른 점은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직장상사는 내가 고를 수 없지만 친해지고 싶은 엄마는 내가 고를 수 있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사람을 골라 사귀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나와 잘 맞는 사람, 만났을 때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굳이 나와 맞지 않고 에너지를 뺏기는 사람과 관계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니까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아이 친구 엄마와의 현명한 관계를 위한 원칙


 그 어렵다는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를 현명하게 끌고 가기 위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을 놓는 것에 신중하자'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로 만났다. '아이'를 통해 관계를 시작한 만큼 '엄마'로서 서로 존중해야 할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이, 학력, 경제력 등 그녀가 가진 배경과 상관없이 엄마라는 자리만으로 평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그래서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내가 이런 만큼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나에게 말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나 또한 내 아이의 엄마로서 그 사람과 동등한 관계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 말을 놓지 않으면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든다. 부부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경우와 같은 이치다. 언니, 동생 사이가 되는 것은 그 사람과의 신뢰가 쌓인 후 천천히여도 상관없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사람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진짜 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엄마로서의 그 '사람'을 관찰하자

 반대로 엄마로서의 그 '사람'은 꽤 유심히 관찰했다. 배경을 떠나 순수하게 그 사람의 태도를 보는 것이다. 육아에 대한 신념이나 가치 등이 나와 비슷한지가 아이 친구 엄마를 사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것들은 보통 엄마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 등하굣길에 아이와 걷는 모습, 나누는 대화,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에서도 그 사람의 됨됨이와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켜보고 관찰하며 확신이 생겼을 때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친해지기도 했다. 그런 사람과도 말을 놓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다. 


 '행복'에 관한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의 관계를 많이 할수록 더 행복하다고 한다. 그 연구에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일이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향적인 나도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일은 행복하다. 그런 만남은 에너지를 채워준다. 모든 관계에 벽을 치고 나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행복할리 없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좋은 사람만 남기를 바라게 된다. 휴대폰 속 저장된 번호가 100명이어도 연락할 한 사람이 없기보다는 저장된 번호가 10개라 해도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사람만 남기를. 그걸 위해서라도 에너지를 뺏기는 소모적인 만남이라면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전업주부의 특권이다. 




*참고자료 : 잡코리아, 재택근무 직장인 400명 대상 조사 결과 참고, 복수응답 가능 / 충북일보 2021.12.01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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