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Jun 24. 2022

예뻐지는데 때가 어딨어?

나는 예쁜 애가 불편하다. 인정한다. 자격지심이다.


예뻐지는데 소질이 없다. 메이크업은 어색하고 고데기나 드라이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법도 모르겠다. 예뻐지는 것을 포기했다. 변명을 하자면 남동생 탓이다. 부모님 탓, 아니 조물주 탓이다. 아빠의 오뚝한 코와 쌍꺼풀을 나에게 주셔야 했다. 엄마의 갸름한 얼굴과 고운 피부를 닮게 하셔야 했다. 남동생은 좋은 유전자를 혼자 다 가졌다. 불공평하다. 한쪽에만 몰아주시면 안 되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른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어머, 너 참 예쁘게 생겼다."


내가 아니라 남동생에게. 나에게는 주로 이런 칭찬을 하셨다.


"어머, 넌 어쩜 이렇게 의젓하니. 뭐든 알아서 잘하더라."


그때부터 알았다. 외모로 이길 수는 없겠구나. 엎친 데 덮친 격. 사춘기가 오면서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다녔지만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것이라 잘 낫지 않았다. 하나 둘 흉터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포기하면 편하다.  


예쁜 애는 뭘 해도 예쁘다. 이건 진리다.


아무리 아름다움과 멀어졌더라도 대학생활은 조금 달랐다. 좋아하는 선배도 있었고, 미팅이나 소개팅도 간간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예쁜 옷을 사 입고 서툰 솜씨로 화장도 하고 미용실에 들러 웨이브 파마를 했다. 그러고는 거울 앞에 섰다. '이 정도면 괜찮아'하고 자신감 있게 출발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 눈이 부시게 예쁜 친구들이 차고 넘친다. 교복을 벗고 사복을 입자 그 차이는 더 심했다.


나는 학습지 판매사원에게는 절대로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돈이 된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정보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꽤 이성적인 여자다. 그런데 미용실에 가면 이성이 무너진다.


"고객님, 머릿결이 많이 상하셨네요. 영양이 어쩌고 저쩌고"

"네, 다 해주세요."


으레 하는 영업에 홀딱 넘어간다.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후회한다. 내가 또 당했구나. 아름다움에 대한 자격지심은 생각보다 깊이 남아 이런 식으로 내 삶에 영향을 끼친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고 곧 마흔이다. 뷰티에 목숨 걸고 덤벼들 이유가 없다. 우아하고 세련되진다한들 이제와 인생이 크게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예뻐지고 싶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미치도록.


용기를 내 금기의 벽을 허문다.


간판만 피부과지 사실은 보톡스와 필러를 놔주고 피부관리를 전문으로 해주는 곳에 내 발로 찾아갔다. 대놓고 '아름다움'을 파는 그곳에. 쉽지는 않았다. 세 번의 예약 취소 끝에 겨우 갈 수 있었다.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연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스크에 앉아 있는 실장의 표정은 친절한 듯 무심하다. 어제도 오늘도 수없이 만났을 고객 중 한 명일 뿐일 테지. 몇 가지 안내사항을 기계처럼 읽어주는 동안 엉뚱하게도 그녀의 고운 피부로 시선이 향한다.


'이 사람도 여기에서 시술을 받을까? 퇴근하면서 보톡스 한 대. 뭐 이렇게?'


잠시 뒤, 역시나 뽀얀 피부에 각 잡힌 유니폼을 차려입은 여자가 방으로 나를 안내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들 곱다. 젊은 여의사는 시술은 처음이냐며 조금 따가울 거라고 금방 끝나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통증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른 호기심으로 꽉 차있다.


'의사 선생님도 자기 얼굴에 레이저를 쏠까? 아니면 의사끼리 서로 해주는 걸까? 이 병원에서 관리를 받겠지? 피부에서 빛이 나네. 빛이 나. 부럽다.'


"아! 따가워!"


일순간 번쩍하는 레이저 빛과 함께 예고 없이 들이닥친 고통에 정신이 든다. 시술은 끝났다.

피부과를 나오는데 묘한 우월감이 든다.


'나는 관리하는 여자야. 예뻐지고 있다고 두고 봐.' 이건 무슨 감정이지.


보톡스나 필러 같은 피부 시술을 받으러 간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 것같은 착각이 든다. 피부과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래서 사람들이 정기권을 끊고 다니는구나.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요즘 나를 두고 하는 소리다. 


내일모레 마흔을 앞두고 간절히 예뻐지고 싶다. 생전 처음 패디큐어를 하고 메이크업 도구들을 새로 샀다. 다음 주에는 귀를 뚫고 모처럼 머리도 길러 볼 참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어차피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 지금부터는 누가 더 부지런히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노년에는 나도 근사 하단 소리 좀 듣고 살지 누가 알아. 예뻐지는데 때가 어디 있어. 이제 나도 멋지게 좀 살아보자.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 언저리 여자들의 우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