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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07. 2022

마흔 언저리 여자들의 우정

우리는 스무 살에 처음 만났다.

그때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된 기쁨을 매일 함께 누렸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백하던 순간에도 곁에 있었다. 첫 남자 친구와 헤어져 울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준 친구들이었다.


함께 놀던 선배들의 연이은 취업 실패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보기에는 잘 나가던 선배들도 줄줄이 떨어졌다. 불안했고 각자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는 캐나다로 연수를 떠났고 다른 친구는 스펙에 도움이 되는 외부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또 한 명은 인턴활동을 시작했다.


서로가 잘 되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잘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서른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 했던 예상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였다.


첫 번째 친구는 공기업에 취직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인사발령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두 번째 친구는 홍보대행사에 수습으로 들어갔지만 해외대학 출신들에게 밀려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 번째 친구는 공무원 준비를 몇 해째 하고 있었지만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 결혼을 했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으며 머지않아 경단녀가 될 처지였다.


서른의 우리는 이따금씩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이야기가 겉돌았고 침묵이 이어졌다.


잘 알지 못하는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직 취직하지 못한 친구의 눈치를 살피느라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러웠다. 결혼생활을 이야기하자니 얼마 전 헤어진 친구 앞에서 자랑 같아 말을 아껴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를 치르듯 만나 우정을 확인했다. 그렇게 만나고 나면 한동안 단톡방은 시끌했지만 그때뿐 금세 또 소식이 끊기곤 했다. 점차 연락이 뜸해지고 코로나 탓인지 덕분인지 우리는 3년간 만나지 않았다. 생일이 되면 축하한다는 말과 별 일 없이 지내는지 카톡메세지로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 사이 다들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공기업에 다니던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고 홍보대행사에 다니던 친구는 상담 일을 하고 싶다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끝내 공무원은 되지 못했지만 더 행복해 보였다. 경기도 외곽에서 이따금씩 아이들을 가르치며 강아지를 키우는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출산과 육아를 이어왔고 아들이 7살이 되자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스무살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꿈꾸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현재에 만족했다.


마흔을 앞두고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웠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인생도 옳고 그름이 없음을 인정했다. 사한 호텔에서 한 끼를 함께 하지 않아도 찬란했던 지난날을 기억해주는 서로가 있음에 감사했다.


3년 뒤 마흔이 되면 우정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래도 20년 된 우정인데 기념은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고 그때 예쁘게 사진 찍으려면 피부관리를 하라며 농담을 나눴다.


친구들은 여전히 미혼이고 나는 그녀들을 만날 때면  괜히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 미용실에 들르고 옷을 새로 사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만남을 갖고 헤어질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편하게 만나도 될 것 같아.'


우리는 마흔 언저리에서 비로소 서로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랄 수 있게 되었다. 혹시라도 나보다 너무 잘 나갈까 봐 샘을 부리는 대신 진심으로 손뼉 쳐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우정은 이렇게 시간과 함께 무르익는다.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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