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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y 18. 2022

안경 쓰는 여자가 어때서?

70대에도 멋지게 안경을 소화하는 여자

유재석. 장성규. 뽀로로. 

이들의 공통점은? 


맞다. 안경이다. 마기꾼 전에 안기꾼이다. 안경이 인물을 살렸다. 유재석은 자신을 희화화할 때 자주 안경을 벗는다. 그만큼 안경을 쓴 유재석과 안 쓴 유재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장성규는 자신의 SNS에 안경과 마스크를 벗고 산책을 하는 사진을 올렸다가 '제발 안경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단다. 궁금해서 사진을 찾아보니 정말 안경을 쓴 쪽이 훨씬 지적이고 깔끔해 보였다. 이들에게 안경은 없어서는 안 될 스타일링의 수단이다. 안경을 하나의 상징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하면 빨간 뿔테 안경이 먼저 떠오른다. 안경점에서 튼튼하고 저렴하기까지 한 빨간 안경테를 우연히 접한 후로 10년 넘게 빨간 테만 쓰고 있단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은 어떤가? 새까만 뿔테에 작은 알의 안경을 쓴 그녀. 안경은 그녀의 예술적 감각을 더 신뢰하게 만든다. 몇 해 전, 공중파 방송의 한 여자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에게 안경은 시력교정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30년째 안경을 쓰고 있다. 여학교를 다닐 때, 우리 반에 절반 정도는 안경을 썼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보니 안경을 쓰는 여자 친구가 거의 없었다. 나도 그즈음 본격적으로 소프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렌즈를 처음 끼던 날. 혹여나 비싼 렌즈가 찢어질까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에 올려놓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눈으로 가져갔다. 눈은 반사적으로 깜빡였고 렌즈 끼기에 몇 번이나 실패했다. 그렇지. 살면서 손가락으로 내 눈동자를 찌를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눈이 겁을 먹은 건지 내가 겁을 먹은 건지 하여간 렌즈를 끼는 일은 꽤 무서웠다. 렌즈 끼기가 익숙해질 때쯤 라식수술이 유행했다. 발 빠른 친구들은 방학을 이용해 너도나도 라식수술을 했다. 수술을 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완전 새로운 세상이야. 정말 편해. 강추!"라며 수술을 권했다.


"수술할 때 안 무서웠어?"

"좀 무섭긴 하지. 눈을 뜨고 수술해야 하니까 다 보이잖아. 그래도 금방 끝나. 별거 아냐."

"부작용은 없어?"

"음... 눈이 좀 건조하고 뻑뻑한 건 있지. 어두울 때는 빛 번짐도 좀 있고. 그래도 렌즈 끼는 것보다는 나아."


나도 고민했다. 백수인 내게 100만 원이 훨씬 넘는 수술비도 부담이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눈에 칼을 댄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이후 취직을 하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렌즈를 끼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다시 안경을 썼다. 안경을 쓰고 일을 하다가도 거래처와 미팅이 있을 때는 다시 렌즈를 껴고 나갔다. 마침 라식수술 상담을 받고 온 동기는 친구를 소개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같이 수술하자고 권했다. 이것이 두 번째 기회였다. 그때도 나는 "부작용이 걱정돼서."라며 수술을 미뤘다. 


거친 아들을 낳고 키우며 안경을 3개째 부러뜨렸다. 첫 번째는 아이가 기어 다니다 벗어놓은 안경을 밟아 부러졌고 두 번째는 장난을 치다가 아들 뒤통수에 부딪혀 안경 코가 부러졌다. 세 번째는 아이를 재우다 안경을 쓴 채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이 실수였다. 이쯤 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한번 라식수술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40세부터는 노안이 시작된단다. 라식수술을 해도 몇 년 안에 근거리용 안경을 착용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의사들도 수술을 적극 권하지 않는단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백내장이 올 경우에는 시력교정술을 받기도 하는데 이 때는 보험이 적용돼서 저렴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뭐야? 지금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건가?' 하는 마음과 '노안이 오면 좀 어때. 단 몇 년 만이라도 편하게 살아보자'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런데 막상 수술을 결심한다 해도 그 과정을 떠올려보면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수술이 간단해졌다고 해도 수술 당일에는 나를 부축해 줄 보호자가 있어야 할 것이고 아이를 돌봐 줄 또 다른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빨리 회복돼서 일상생활을 한데도 한동안은 병원 검진도 자주 다녀야 할 거고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거다. 야간에 운전을 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아이를 태우고 위험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술비가 저렴해졌어도 그 돈이면 아들 6개월치 학원비는 될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결론은 '그냥 생긴 대로 살자'가 돼버렸다. 


수술도 포기한 마당에 비싼 안경테 한번 써보자 싶어 유명디자이너 브랜드의 안경을 보러 갔다. 안경 인생 처음으로 30만 원짜리 안경테를 새로 샀다. 알까지 넣고 나니 4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 안경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는 잘 어울렸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왜 그런지 자꾸 나사가 풀려 헐거워진다. 그때마다 안경점에 가서 손을 봐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다시 동네에서 5만 원 주고 산 안경에 자연스레 손이 가기 시작했고 40만 원짜리 안경은 서랍에 고이 모셔놓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딱히 렌즈를 끼고 멋을 부리며 만날 사람도 없을뿐더러 요즘 같은 꽃가루 알레르기 시즌에는 결막염으로 자주 안과에 가는 처지가 되어 동네에서 산 저렴한 안경과 더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한 번씩 '내가 너무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처럼 보이나?'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안경을 쓰면 눈 화장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여성스러운 원피스나 페미닌 한 느낌의 옷들도 잘 안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청바지에 흰 티를 입게 되고 외모에는 좀 무심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어떤가? 외모에는 관심 없는 못생긴 여고생이 안경을 벗고 미녀가 되어 남자들의 환심을 산다든지 성격은 까칠하고 부드러운 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노처녀는 항상 안경을 쓰고 나온다든지 일종의 안경 쓴 여자에 대한 공식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괜찮다. 안경을 벗는다고 미녀가 될 만큼 예쁜 얼굴도 아닐뿐더러 노처녀도 아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남은 인생도 안경과 함께 살 운명인 것 같다. 


오늘은 TV에서 안경을 쓴 멋진 여자를 봤다. 백발의 노인이었다. 70세를 훌쩍 넘긴 저 여자도 아마 노안 때문에 안경을 썼겠지? 그런데 저 나이에 저렇게까지 안경을 멋스럽게 소화할 일인가. 그래. 오늘부터 내 롤모델을 저 사람으로 삼아야겠다. 어차피 평생 안경과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멋지게 스타일링이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70세까지도 멋들어지게 안경을 소화하는 사람. 안경을 쓰고 당당히 미국 토크쇼에 출연하는 사람. 윤여정처럼 말이다. 




*사진출처 : tvN 뜻밖의 여정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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