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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y 09. 2022

한 달에 한번, 그분이 오신다.

- 가임기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럼 그렇지. 그날이 다가온다. 반갑지도 않은 손님. 25년 전쯤 불쑥 찾아와 한 달에 한 번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분. 기분이 엉망이다. 남편이 숨 쉬는 것만 봐도 짜증이 난다. 잠도 잘 안 온다. 어렵게 잠들어도 수십 번쯤 깬다. 잠을 못 잤으니 하루 종일 피곤하다. 급한 대로 피로회복제를 사 먹는다. 제일 싼 걸 먹었더니 효과도 없다. 만 원짜리로 사 먹을걸.

"야!!!!!!!!!!!!"

잘못도 없는 아이한테 버럭 화를 낸다.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그 모습에 또 짜증이 난다. 나도 안다. 네 탓이 아니다. 호르몬이 문제다. 그분이 오고 있다. 이렇게나 요란하게 올 일인지. 그냥 조용히 왔다 가면 안 되는 건지. 아랫배가 부풀고 다리 부종이 심해지고 영 기운이 없다 했더니 오셨다. 그분이.


외동을 확정했다. 나는 더 이상 임신, 출산 계획도 없다. 하지만 폐경이 되는 그날까지 생리를 해야만 한다. 엄밀히 말하면 생리는 괜찮다. 참을만하다. 내가 참지 못하게 힘든 것은 그분이 오기 전 예고편처럼 찾아오는 '생리 전 증후군'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백과사전에 따르면 생리 전 증후군이란 생리 전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로 여성 3명 중 1명은 경험하게 되며, 여성 20명 중 1명 정도는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라고 한다.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나지막이 소리쳤다.


 "제길. 그 20명 중에 1명이 나라고!!!!!!"


그렇다. 어떤 달은 가볍게 어떤 달은 무섭게 지나간다. 하루 종일 물만 마셔도 구토를 하는 덕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하는 달도 있다. 그런 달은 1~2kg 감량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행이나 가족 나들이를 계획할 때도 나의 그날을 고려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여행 내내 워있다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임신기간이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임신 중에는 생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폐경이 보통 50대에 온다고 하니 앞으로 10년은 더 남았다. 지긋지긋하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가임기 여성의 출산을 위한 인체의 신비라면 그 기간을 현실적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2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로 짧고 굵게. 그렇게 진화할 수는 없는 걸까?


친구 세영이는 7살, 5살 남매를 둔 아이 엄마다. 어릴 때는 운동을 해보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을 만큼 건강을 타고났다. 그 덕에 병원에 갈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세영이가 요즘 산부인과를 자주 들락거린다. 이유인즉 출산 후 생리 전 증후군과 생리통이 심해졌단다. 마흔 가까이 한 번도 생리통이란 걸 경험한 적이 없다 보니 놀라 당장 검사를 해보았단다. 자궁 낭종이라고 했다. 떼어낼 정도는 아니라 추적검사만 하면 된다고 한다.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라지만 이제는 한 달에 한번 그날이 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단다.


"대학병원을 예약했어. 내 인생에 대학병원은 처음이야. 차라리 큰 병이라 자궁적출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게 더 나을까?" 라며 고민상담을 해온다. 친구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한다. 나도 그날이 올 때마다 늘 생각한다. '출산할 계획도 없는데 그냥 이 자궁 떼어버리고 싶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할 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결혼 전에는 그나마 나았다. 나 혼자만 아프면 되니까. 회사는 연차를 내고 핫팩을 배에 끼고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쉬면 좀 나았다. 그럼 친정엄마는 죽이나 따뜻한 국 같은 것을 끓여 한 숟가락이라도 뜨라며 내밀었다. 유전력 덕분인지 친정엄마도 나의 고통을 잘 알았다. 아이가 생기고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어도 아이 끼니를 차려야 하고 유치원에 간 아이를 마중 가야 한다. 남편에게 휴가를 내고 도와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매 달 그럴 수는 없다. 복용 가능한 최대치의 진통제를 먹어가며 기어서라도 아이를 돌봐야 한다. 도움을 청하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는 늘 이렇게 받았다. "왜? 너 또 아프니?" 차라리 자궁을 떼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간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세영이의 상황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근로기준법 73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생리휴가를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본과 인도네시아 정도라니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굉장히 진보적인 법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법장치를 만들어서까지 보호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마저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니 유명무실한 법이 아닐 수 없다.


세영이와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세영아, 우리 아들한테는 꼭 가르치자.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말이야. 그런 게 살아있는 성교육 아니겠니?"


D-7. 이번 달도 생리 전 증후군이 시작됐다. 벌써 아이에게 열 번쯤 소리를 질렀다. 별 것도 아닌 일로 화를 냈다. 내 눈치를 보다 못한 남편은 그만 좀 하라고 버럭 소리쳤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잠도 안 온다. 나도 그만하고 싶다. 콧물을 훌쩍이며 인터넷에서 생리 전 증후군을 검색한다. 비타민B6, 마그네슘, 달맞이꽃 종자유, 철분 등 효과를 보았다고 하는 영양제를 주문한다. 내일은 약국에 들려 생리통 약도 미리 사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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