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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29. 2022

길 떠나는 친구여, 브런치를 해라.

그녀가 떠났다. 


역마살이 낀 것일까. 

사주를 봤지만 그건 아니란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건 네 번째다. 

일본, 호주, 영국 워킹홀리데이만 세 번을 다녔다. 


그 덕에 내 결혼식에도 못 왔다. 

두고두고 서운한 일이다. 베스트 프렌드가 결혼사진에 없다는 건. 


몇 해 전, 호주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꽤 오래 한국에 머물렀다.

언제 또 떠날지 모르는 베스트 프렌드를 자주 불러냈다. 

출산 당일. 의도한건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부대찌개를 먹어준 것도 남편이 아니라 그녀였다.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었을 때. 난 늘 혼자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자주 찾았다. 일부러 그랬을거다. 

도시락을 싸들고 우리 아이와 함께 소풍을 가주었고, 

친정엄마처럼 먹을 것을 싸들고 와서 요리를 해주었다. 


"나, 여기 공원 아기랑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갈래?" 


그럼 그녀는 운동복차림으로 나와 우리 아이와 열정을 다 해 놀아주었고

덕분에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누렸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노는 것이 즐겁기만 했을 리 없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를 위해 그랬다. 출산 후 우울증에 걸릴까 걱정했던 게 틀림없다. 


내가 갑작스럽게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주변 친구들이 자꾸 떠나. 분양받았다고 이사 가고 발령받았다고 지방 가고 이제 너까지 가는구나."


그녀의 인생사를 알고 있는 나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가 보다. 얼마 뒤 그녀는 일본으로 취업을 알아보고 있다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가는데?"

"그건 모르지. 나이도 있고 취업이 쉽지는 않겠지."


예상과 달리 취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그녀는 오늘 아침 일본으로 떠났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언젠가는 다시 갈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모셔 둔 엔화를 꺼냈다. 

1만 엔을 봉투에 넣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떠나기 전 기프티콘을 써야 한다며 커피를 샀다. 

나는 염치없이 그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리고 1만 엔을 내밀었다. 다행히 받아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 교환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때 알았다. 내가 정말 그녀를 아끼는구나. 눈물이 핑 돌았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카톡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자기도 나를 사랑한단다. 


'토나와. 그만해.' 메시지를 남겼다. 20년만에 겨우 진심을 전한 우리는 찐친이다.


그녀의 발걸음은 왜 그런지 가볍지가 않다. 

스스로 선택한 해외취업이지만 누군가는 능력있다고 부러워했지만

그건 한국에 정착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토록 여러 나라를 헤맨 것도 그랬다. 그녀를 받아 줄 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는 그녀에게 브런치를 권했다. 


마음이 힘들고 외로울 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일기를 써. 노트북은 가져가지? 

기왕이면 브런치에 글을 써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다는 걸 알면 마음이 한결 좋아질 거야. 

너는 특이한 이력이 많잖아. 누가 또 알아. 너의 그 이력이 매력적인 소재가 될지. 

그러니까 마음이 힘들 때는 브런치를 해! 


내 브런치 주소를 알려줄까 하다가 말았다. 

솔직해지려면 가까운 사람이 읽지 않는 편이 좋다. 

나도 그녀의 주소를 묻지 않을 생각이다. 


어느 날 우연히 우리가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글로 만난다면 한 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외로울 그녀가 꼭 브런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위로받고 관심받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쯤 숙소에 도착했으려나.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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