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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01. 2022

내가 만난 택시 아저씨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빗속을.


윤종신 <이별택시> 중에서


택시는 복불복이다. 내가 호출한 택시에 어떤 기사님이 타고 계실지 알 수 없다. 기사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손님이 탈지 가늠할 수 없다. 목적지가 가까울 때야 어떤 기사님이 오시든 크게 상관없지만 꽤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할 때는 기사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꽤 중요하다. 작은 공간 안에 기사님과 나 오로지 둘 뿐이고 게다가 좋으나 싫으나 목적지까지 함께 해야 한다. 기사님이 누구냐에 따라 굉장히 숨 막히는 여정이 되기도 기분 좋은 시작이 되기도 한다.


주로 나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택시기사님은 크게 두 부류다.


첫째,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라며 잘 나가던 과거를 읆으시며 본인의 옛날이야기를 하시는 기사님

둘째, 불필요한 말은 아끼시고 어색함을 깨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시는 기사님


첫 번째 기사님은 과거를 산다. 잘 나가던 과거를 줄줄 읊는다. 그 이야기가 현재의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는 걸 모르신다. 기분 탓인지 택시 안도 너저분하다. '내가 그때 사기만 당하지 않았어도' , '회사 계속 다녔으면 지금쯤은' 라며 계속 가정을 한다. 그런다한들 과거는 지나간 일. 달라질 수 없다. 본인도 알고 계실 거다. 이 기사님의 현재는 불행할 확률이 높다. 현재가 불행한 기사님이 손님에게 친절하기는 어렵다. 손님은 곧 돈이다. 하나라도 더 태워야 한다. 속도위반의 경계를 아슬아슬 피해 가며 전속력으로 달린다. 잦은 차선 변경으로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꼭 쥐게 된다.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기사님의 기분을 살피느라 덩달아 초조해진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음 손님을 향해 휑하니 떠나신다. 감정은 쉽게 전염돼서 괜히 택시를 탄 나까지 기분이 상한다.


두 번째 기사님은 현재를 산다. 이 분도 잘 나가던 과거를 회상하시지만 뉘앙스가 좀 다르다.


"회사에서 퇴직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도 이 개인택시라도 하나 장만한 게 다행이죠."


라며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한다. 당연히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퇴직하고 밥벌이라도 해주는 택시가 고마우니 그 택시에 탄 손님도 귀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런 택시는 급정거나 급발진도 드물다. 안전 운행한다. 내릴 때 인사도 잊지 않는다. 아이랑 함께 탈 때면 가끔 사탕 같은 간식도 쥐어주신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런 택시는 대체로 실내도 외관도 깔끔하다.




내가 부모로서 늘 고민하는 질문이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진심으로 만족하는 직업을 갖느냐?'이다. 즉, 어떻게 하면 두 번째 기사님처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느냐는 문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다.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그 안에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또 현실적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직장을 오래 다니려면 빚을 내라는 말이 화제가 됐을라고. 그렇게 빚 때문에 혹은 딱히 다른 대안도 없으니까 그야말로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던 직장인이 뒤늦게 꿈을 가지고 도전하여 성공하는 모습에 환호한다. 한편으로는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간다 한들 또 다른 밥벌이에 뛰어들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나는 아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고, 그럭저럭 조건에 맞는 일을 해도 좋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일지라도 그 일에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 사람의 태도가 된다. 태도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어렵다. 모호하다. 차리리 의사, 변호사처럼 특정 직업이라면 로드맵이라도 있을 텐데 태도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내 일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


아이는 말로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거라고 했다. 소득도 없고 열심히 해야 표도 안나는 전업주부라 해도 엄마로 아내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동시에 글을 쓰고 발레를 하는 30대 후반의 건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모두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둘째는 아이가 겪은 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주는 것.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아직 자아상이 분명하지 않은 어린아이일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받아쓰기 10개 중 3개를 틀려 온 아이에게 "3개를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수양하는 마음으로 부모교육서를 읽고 또 읽는다.




쉽지 않다. 그래도 '긍정적인 태도'라는 씨앗이 아이에게 평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노력해볼 만하다. 지금부터의 삶은 두 번째 택시기사님처럼 살고 싶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기.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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