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Jul 08. 2022

살림이 귀찮은 전업주부

"야! 너 방이 이게 뭐야? 벌레 나오겠다. 아우 못살아 정말. 너는 여자 애가 이래서 나중에 살림이나 제대로 하고 살겠니?"


"언제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며! 걱정하지마. 나는 결혼하면 돈 많이 벌어서 도우미 쓸 거야."


 엄마의 예상은 적중했다.


 개수대에는 아직도 아침에 먹은 그릇이 그대로 쌓여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화장실에 머리카락도 주워야 하지만 다 미뤄두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앉아있다.


 돈 많이 벌어 도우미를 쓸 거라던 패기 넘치는 나는 어디로 갔는가. 돈을 많이 벌기는커녕 경단녀가 되어 집에서 놀고 있다. 집안일이나 살림에는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던 내가 어쩌자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건지 모르겠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고, 일과 살림을 모두 잘 해 낼 자신도 없었다. 더 이상 어딘가로 출근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자발적 전업주부라니. 친정엄마가 들으면 코웃음 칠 게 뻔하다.

전업주부 : 다른 일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을 전문으로 하는 주부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전업주부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안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찔린다. 그렇다면 반대로 직장인은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가 싶어 검색해보았다.

직장인 :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이건 불공평하다. 직장인의 정의에는 눈을 씻고 찾아도 '전문'이라는 말은 없다. 매일 아침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면 전부 직장인이란 뜻이다. 그럼 전업주부의 정의에도 '전문'이라는 말은 빠져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집안일을 하는 주부라면 모두 전업주부라고 인정해주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수정하고 싶다.




전업주부 8년 차.


 나는 여전히 살림이 싫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 정갈하게 밥상을 차려내고, 모델하우스처럼 집 안을 꾸미고, 알뜰살뜰 현명하게 소비하며 살아가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어제 저녁식사를 차릴 때만 해도 그렇다. 김치찌개 하나를 겨우 끓여낸 후 반찬을 꺼내려 냉장고를 열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가 먹을 반찬이 하나도 없다는 걸. 매운걸 못 먹는 아이는 결국 김에 싸서 밥을 먹었다. 인테리어의 핵심은 통일성이라는데 우리 집에는 알록달록 개성 강한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알뜰한 건 모르겠고 필요한 것만 구입하려고 노력은 한다. 노력은.


 그럼 나가서 돈이라도 벌지 왜 전업주부를 하고 있느냐고. 남편이 갖다 주는 월급으로 취미생활이나 하고 쇼핑이나 하는 팔자 좋은 여자 아니냐고. 맞다. 남들이 보면 그럴 수 있지. 내가 어제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으려다 부쩍 오른 물가에 놀라 그냥 나온 걸 모를 테니까. 다음 주부터 통신사 할인이 적용된다는 광고를 보고 '할인할 때 사 먹어야겠다' 라고 포기한 것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살림이 귀찮아도 집안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나는 전업주부로 살아야겠다. 남들 생각처럼 팔자 좋은 여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세한탄이나 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살림이 귀찮아도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 혹은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살림은 하기 싫은 누군가가 있다면 내 글을 읽고 '피식' 미소 지으면 좋겠다. 그 미소로 잠시라도 행복하다면 성공이다. 




*사진출처 : pixaba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