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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12. 2022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00 씨가 PTT는 잘 만들잖아. 부탁 좀 해."
"00 씨가 와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 돼?"
"선배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거라고.

쉼 없이 전화가 울렸고,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았고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이 해도 할 일은 늘 많았으니까. 도대체 내가 없으면 이 회사가 돌아가기는 할까 했다.

만삭까지 출장을 다닌 것도 '내가 아니면 누가 해'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미련했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대체인력이 채용되었다.
똘똘한 신입 인턴사원이었다. 어린 친구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경험도 없는 어린애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귀찮게 자꾸 전화하면 어떻게 하지'

건방졌다. 나 없이도 회사는 잘 굴러갔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질문을 하는 전화도 왔지만

한 달쯤 지나자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았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그맘때쯤 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정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작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차라리 감사했다.


어릴 때 꿈꾸던 멋진 커리어우먼. 일과 육아를 모두 완벽히 해내는 워킹맘. 그것 대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찾아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다.


밀린 설거지나 빨래는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먹이는 일은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관리비나 공과금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왜 그렇게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했을까?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믿던 집안일, 아이를 키우는 일, 살림을 꾸리는 일 조차도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남편의 도움, 가전,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등.

돈 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 대체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그건 단 한 가지뿐이다.  


나 자신을 돌보는 일.


그 일이야말로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이 찾고 밀린 집안일이 눈에 띄어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내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그 일.
나 자신을 돌보는 일.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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