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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11. 2022

집에서 뭐하는지 묻지 마세요.

 "집에서 뭐 하세요?"


 괜히 찔린다. 이 질문은 언제, 누구에게 들어도 당당해질 수가 없다. 비슷한 류의 말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너는 집에서 쉬니까 좋겠다."

 "나도 너처럼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 살림만 하면서."


 자고로 전업주부라면 가족이 없는 시간에는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거나 밀린 설거지나 빨래, 청소 아니면 아이가 돌아와서 먹을 간식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상상할 텐데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글을 쓴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취미로 일기를 쓰는 수준이고, 아직 아무 성과도 없으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쓴 글을 공개할 용기도 없다. SNS를 한다고 하면 할 일 없이 남들 사는 거나 염탐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조심스럽다. 그냥 논다고 할 수도 없다. 엄밀히 말해 놀고 있는 날은 하루도 없으니까. 발레든 독서든 글쓰기든 뭐든 하고는 있다. 그게 노는 거 아니냐고 하면 할 말 없고.


 그래서 그런 류의 질문에는 늘 웃으며 얼버무린다.


 "그냥 뭐. 그냥 있어요." 


 그냥은 정말 아닌데. 등원부터 하원 시간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줄곧 머릿속으로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책도 읽고 자료도 찾고, 자기계발에도 열심히지만 안타깝게도 '그냥 있는 사람'이 된다.


 반대로 같은 질문을 다른 전업맘들에게 하면 대게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설거지, 빨래, 청소하다 보면 금방이죠."

 "운동 다녀와서 씻고 밥 먹으면 하원 시간이에요."

 "아이 엄마들이랑 차 마시다 보면 훌쩍이죠."


 정말로 그녀들도 그게 다 일까. 내가 글 쓰는 걸 비밀로 하듯이 그녀들도 하나씩 숨기고 있는게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는 아줌마들의 은밀한 사생활. 열심히 이력서를 넣고 있다든지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에 빠져있다든지 아니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


 직장인에게 회사에 있을 때는 뭐하냐고 묻지 않듯이 전업주부에게도 집에서 뭐하는지 묻지 않으면 좋겠다.

뻔한 대답이라 식상하거나 말 못 할 이야기라 서로 민망해지니까. 대신 전업주부에게도 이런 질문을 해주면 좋겠다.


 "취미가 뭐예요?"

 "요즘 무슨 책 읽어요?"

 "준비하는 일은 잘 돼가요?"


 그럼 나도 남편이나 아이 이야기 말고 당당하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취미는 발레고요, 나이듦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어요. 글을 쓰고 있는데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고 꾸준히 해보려고요."


 전업주부 아줌마라고 남편,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 전업주부에게 제발 묻지 말아 주라.


"집에서 뭐 하세요?"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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