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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21. 2022

아플 때 달려와 줄 사람은 누구?

아이들은 왜 그렇게 뛰는 걸 좋아하는지. 빗길에 달려가던 여자아이 하나가 끝내 넘어지고 말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아이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와 까진 무릎을 확인한다.


"어머! 흉 지면 어떻게 해? 괜찮아?"


아이 손을 잡고 급히 집으로 향하는 아이 엄마. 아마 집에 가서 다친 부위를 물로 닦아주고 꼼꼼히 연고를 발라준 뒤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고급 밴드를 붙여주겠지.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저런 존재였으리라. 곱게 키운 딸 손, 다리, 무릎 남들은 알지도 못하는 어딘가에라도 흉이 질까 작은 상처에도 안타까워하며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가 내게도 있었다.


서른 하고도 일곱 해를 더 산 지금, 손발에 상처가 났다고 호들갑을 떨며 달려와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제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둔 돈가스를 꺼내다 열선에 손등이 닿았다.


"앗 뜨거워!"


바로 찬물로 열을 식히고 얼음찜질을 했지만 생각보다 강한 열 때문인지 상처가 깊었다. 화상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 채 남은 식사 준비를 마쳤다. 물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아이더러 밥 차려 먹으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 꾹 참고 밥을 차렸다. 손등에 붙은 밴드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밥을 먹고 느닷없이 미뤄두었던 침대 프레임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매번 버려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늘 그곳에 있던 프레임이 눈에 거슬렸다. 남편을 설득해 프레임을 분해하고 옮기다가 이번에는 발가락을 찧었다.


"아!"

"괜찮아? 움직일 수 있어? 부러진 거 아니면 괜찮아. 금방 나아."


순간 무심한 남편의 말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서른일곱 살 먹은 여자가 갑자기 넘어져 울던 7살 여자아이로 빙의하여 말을 꺼냈다.


"이것 봐! 아까는 저녁 차리다가 손을 데었고 지금은 발가락을 찧었어. 피도 나잖아. 나 진짜 아프다고."


남편 표정이 조금 당황한 듯하다. 거기에 대고 더 황당할 말을 꺼냈다.


"빨리 호~ 해줘!"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장난치지 말라며 하던 일을 계속한다.


"농담 아니야. 진짜 아프다고.

빨리 호~ 해달라니까!"


아이가 먼저 엄마의 기분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는지 달려와 호~ 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데인 손등에 입술을 대고 뽀뽀를 해준다. 남편은 마지못한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호! 하더니 이제 됐지? 하는 표정으로 씩 웃는다. 그제야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손등에는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 흉터가 아픈 기억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만약 남편과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흉 진 손등을 볼 때마다 슬픈 생각이 들었겠지. 하지만 호~하고 치료받았고 함께 웃었으니 행복한 기억도 같이 떠오를 거다.


나는 다짐한다. 내 남편이 종이 모서리에 손가락을 비어도 괜히 호들갑을 떨며 걱정해주기로. 어른이니까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하지만 어른이라고 왜 안 아프겠는가. 꼼꼼히 연고를 발라주고 호~ 불어주며 흉 지지 않게 빨리 나으라고 빌어줄 거다.


어른이라고 내가 아플 때, 다쳤을 때 아무도 달려와주지 않는다면 상처 보다도 마음이 더 아플 테니까.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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