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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14. 2022

그녀들은 신선했다.

그녀들은 신선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만나면 흔히 나누는 질문.

'아이는 몇 살이냐, 아들이냐 딸이냐' 같은 호구조사를 하지 않았다. 몇 살인지 남편은 뭘 하는지 심지어는 이름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카페에 앉아 2시간을 이야기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간단한 호구조사도 없이 어떤 이야기로 2시간을 채웠을까?



나는 지방에 산다. 올해 2월, 8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마치고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왔다. 지방이면 집값이 싸다고들 생각하는데 다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서는 가장 부자들이 산다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전셋값은 서울 여느 지역과 견주어 볼 만하다. 으리으리한 그곳에 사는 건 아니지만 그 단지 상가에 있는 발레학원을 다니고 있다.


저렴한 에코백에 대충 옷가지를 넣어 다니는 나와 달리 샤넬백에 운동복을 넣어 다니던 첫 번째 그녀는 최근 디올로 브랜드를 바꿨다. 우리 집에는 하나도 없는 명품백이 여럿 있는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고 서둘러 나서던 두 번째 그녀. 골프레슨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친정이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단다.


옷걸이에 걸린 브랜드 옷이며 신발장에 명품 신발들을 보며 내 옷차림을 다시 살펴보게 된 건 본능이었다.


회원 중 한 명이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명품백의 첫 번째 그녀였다면 골프를 치는 두 번째 그녀였다면 있지도 않은 약속이 있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을지 모르겠지만 평소 유쾌한 농담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그녀의 제안이었으므로 따라나섰다.


셋이 모였다.

신선한 질문을 한다.


"발레 말고 다른 취미는 뭘 하세요?"


이 질문은 다들 발레 외에 취미를 한 가지쯤 더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듣고 보도 못한 그녀들의 취미 이야기가 이어졌다. 포세린 인형이라든지 수입 브랜드의 앤틱 접시, 티포트 따위. 나만 모르는 이야기인 듯 해 연신 아는 척 고개만 끄덕였다.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그녀, 커피를 볶는다는 그녀, 예술의 전당 유료회원이라는 그녀들 앞에서 아이 학원비를 아껴 겨우 발레학원을 록 한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저는 글을 써요."


라고 했다. 글을 써서 어쨌든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다음 수업이 끝나고 또 한 번 커피를 제안한다면 나는 기꺼이 나갈 생각이다.


명품백이나 피부과 시술 이야기 대신 아이 교육이나 학원 이야기 대신 자신의 취미를 수줍게 고백하는 그녀들이 좋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장만할 리 없는 앤틱 수입 접시 이야기나 그녀가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포세린 인형 이야기, 고속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에 다녀와 어떤 공연을 보았는지, 바이올린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를 이야기하는 수줍은 그녀들의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


이 아줌마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나는 너무 궁금하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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