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타드를 안 사면 뭘 사니?

by 책봄

머지않아 마흔.

7살 사내 녀석을 키우는 아들 엄마.

삼시세끼 뭘 먹을지, 뭘 먹여야 할지가 인생 최대의 과제인 전업주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수식어다.


이런 정체성에 어울리는 코디는 무엇일까.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속살이 힐끗힐끗 보이는 크롭티를 입고 갈 수는 없다. 동네 엄마들과 커피 한 잔 하는 자리에 홀터넥 니트를 입고 나타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 오프숄더의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는다면? 물론 안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 부자연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 결국 또 주워 입는 옷은 티셔츠에 바지다.


옷을 잘 입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TPO에 맞추어 옷을 입으라고 한다.


Time (시간)

Place (장소)

Occasion (상황)


그렇다면 이른 아침 시간(Time),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Place), 아이 선생님 또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가볍게 마주치는 상황(Occasion)에 가장 적당한 옷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 옷 타령을 시작하는 이유는 찬바람 불고 옷 정리를 할 때가 되어서다. 한숨이 나온다. 사시사철 또 반복이다. 매일 아침 옷장 앞에 서서 입었다 벗었다 시간만 보내는 일. 물리적으로 입을 옷이 없는 건 아닌데 실제로 매일 손이 가는 옷은 거기서 거기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동네 1km 반경을 벗어날 일이 없고, 수시로 놀이터 벤치나 흙바닥에 앉아 아이와 씨름을 해야 하고, 그 덕에 찬바람이 부는 요즘에도 땀이 흐르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이란 말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청바지에 티셔츠가 베스트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코디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반강제로 스티브 잡스 스타일이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 주라. 사실 나는 매일 밤 패션 유튜버 채널을 돌려가며 시청하는 마음만은 뜨거운 아줌마다. 게다가 엄청난 몸매는 아니지만 2년 동안 취미 발레로 다져진 몸이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크롭티를 입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복근이 있고,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꽤 괜찮아서 홀터넥이나 오프숄더를 입어도 손색이 없을만한 몸이란 말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자랑을 좀 하고 싶다. '나 운동 좀 했어' 보여주고 싶고 마음껏 칭찬받고 싶다. 내가 연예인이라면 힘들게 몸을 만들었다고 한 줄 기사라도 날 텐데 여기저기 방송에 나가 비법 전수라도 할 텐데 나는 연예인이 아니니 오로지 자기만족으로 끝이다. 함께 사는 두 남자는 그런 쪽으로는 영 둔해서 별로 관심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유행에 맞춰 수시로 옷을 새로 살 돈도 없고, 그런 옷을 입고 마땅히 갈 곳도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게 운동을 하고 몸이 좋아진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건 당연한 감정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겠냐고. 레오타드를 사야지. 그곳에서는 그게 룰이니까. 등이 훤히 뚫리고 어깨 위에 가는 끈만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캐미솔을 입는 것이 정석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거기서라도 홀터넥을 입고 크롭 워머를 걸치고 어깨를 자신 있게 드러내야지 어쩌겠어. 거기가 아니면 내가 발산할 곳이 없으니까. 발레학원 전신 거울 앞에 70분 동안 서서 홀터넥 레오타드를 입고 잔근육을 뽐내는 내 몸을 바라보며 스스로 만족해야지. 그렇게 멋진 나에게 취해서 또 하루를 일상을 근근이 버텨야지 어쩌겠냐고.


그러니까 부탁한다. 빨래대에 야시시해 보이는 손바닥만 한 옷이 걸쳐져 있더라도 모른 척해주기. 발레학원 간다고 준비하면서 그 옷을 입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도 그러려니 이해해주기.


아들, 너 학원에 라이딩해주면서 크롭티 입고 복근 자랑을 할 수는 없잖니.

남편, 시댁 식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오프숄더를 입고 갈 수는 없지 않겠니.


그러니까 내가 레오타드를 안 사면 뭘 사니?



*사진출처 : 이발레샵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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