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레를 시작한 것도 예술보다는 운동으로였다. 무용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거나 특별히 발레에 취미가 있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고, 요가도 필라테스도 흐지부지 큰 흥미를 갖지 못하던 때 마침 발레핏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꽂혀 수강신청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자세를 교정하고, 우아한 몸선과 잔근육을 키우는데 발레가 그만이라는 광고에 혹했고, 발레리나의 몸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웬걸. 발레는 내가 상상하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턴아웃을 한 채 엉덩이에 힘들 꽉 주고 서 있는 것만으로 땀이 줄줄 흐르고,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우아하기는커녕 허우적대고 있는 행사장 풍선 같다. 발레리나처럼 쫙쫙 다리를 찢고 스트레칭을 할 때면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으악! 살려주세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발레라는 녀석이 참 묘하다. 악 소리를 내면서도 우아한 척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 가끔 NG처럼 비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순서를 따라가기도 바빴는데 그 순서가 익숙해지고 나니 엉터리 동작을 하고 있으면서도 멋진 춤을 추고 있다는 상상에 빠져든다.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레오타드를 사모으는 이유도 그 상상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데는 음악도 한몫한다. 발레라고 하면 흔히 클래식을 상상하겠지만 의외로 인기가요, 영화나 드라마의 OST도 발레음악으로 등장한다. 유튜브에서 '발레음악 가요'를 검색하면 익숙한 가요가 발레 동작을 위한 연주곡으로 변형되어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늘 같은 수업이지만 오늘은 겨울왕국 OST를 틀어주셨다. 나는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엘사가 되고, 해변가에서 선텐 하는 상상에 빠진 울라프도 된다. 심지어 윤종신의 '팥빙수'에 맞추어 그랑 바뜨망을 차던 날은 나도 모르게 깨방정 표정이 지어졌다. 매번 반복하는 쁠리에와 턴듀, 롱드잠이 새롭고 신날 수 있는 것은 음악 때문이다. 음악에 따라 엘사도 되고, 울라프도 되고, 시원한 여름 팥빙수를 상상하며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내려왔다는 착각.
레오타드가 땀에 젖어 축축해지고, 집에 돌아갈 때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렇게 2년을 하니 근육도 생기고 자세교정도 되었다는 이유로 내가 하는 걸 단순히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단순히 운동이었다면 몸 쓰는 것에는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는 내가 2년 동안이나 꾸준히 했을 리 없다. 이건 분명 운동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그것은 바로 예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예술을 비루한 몸뚱어리로도 해내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발레의 매력이다. 예술은 특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에게도 예술을 누릴 자격이 있고, 이런 인생도 예술이 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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