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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r 12. 2024

한 걸음 더 걷게 하는 편지

<청소년의 햇살> 2024년 3월호


 

3월이 되면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꽃> 그림을 꺼내 본다. 빈센트는 생전 다양한 아몬드 꽃을 그렸다. 아몬드 가지를 꺾어와 컵 속에 넣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을 그리기도 했고, 나무의 윗부분만을 세밀하게 그리기도 했다. 또, 과수원에 나가 꽃으로 뒤덮인 나무 전체를 그리기도 했다. 빈센트는 봄이 당도하고 있음을 알리는 아몬드 꽃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생각했다. 추위를 뚫고 잎 보다 꽃을 먼저 틔우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빈센트가 그린 <아몬드 꽃>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파란색 배경에 아몬드 나무 윗부분이 있는 그림이다. 마치 땅 위에 누워서 하늘에 걸린 아몬드 나무를 바라보는 구도로 그렸는데, 이 그림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빈센트가 세상에 태어난 조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빈센트의 동생 테오는 아들의 이름을 형의 이름과 똑같이 짓겠다고 전했다.  빈센트는 만류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즉시 ‘아몬드꽃 나무’를 그렸다. 테오와 아내, 그리고 조카가 함께 쓰는 침실 벽에 걸게 될 그림을.        


빈센트는 생명에 대해 늘 경탄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생명의 신비’를 찾았고, 시들어가던 삶에도 새로운 생명의 의미를 부여해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빈센트의 이런 삶의 철학은 그가 남긴 900여 통의 편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삶의 어려운 시간들을 날씨에 비유했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고.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혹독한 추위는 끝나게 되어 있고, 따뜻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얼음이 녹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니 마음의 날씨도 좋을 때가 있을 것이고, 삶도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이다.      


그는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래 바람이 날리는 해변에서도 이젤을 모래바닥에 박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끝인가 싶어 다가간 길 끝에 모퉁이로 돌아가는 또 다른 길이 있어도 체념하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 또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고자 하는 곳에 당도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빈센트가 남긴 편지를 읽다보면, 마음속에 ‘재생 장치’가 작동하는 느낌이 든다. 시들어 가던 마음에 물을 주어야겠다고, 지친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더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새로운 생명에 경탄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황홀해 할 줄 알고, 부정보다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3월, 크고 작은 두려움에 휩싸여 꼼짝 할 수 없다면,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던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아무리 두려워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찬란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기고 엮음, 위즈덤하우스, 2017

* <청소년의 햇살> 2024년 3월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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