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널 ‘배’를 가졌던 당신, 장에게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고

by 편지큐레이터


당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었습니다. 상큼한 민트색 옷을 입은 책은 ‘녹색광선’에서 출간한 네 번째 작품이었죠. 이 책이 출간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설렜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쓴 사람이 ‘마르그리트 뒤라스’였으니까요. 제 공부 카테고리에 있는 작가,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니 당신과 ‘그해 여름’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뒤라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그의 젊은 연인 얀에 대해서도요.


제가 뒤라스를 알게 된 건 <이게 다 예요> 덕분이었어요. 뒤라스가 ‘얀에게 남긴 유서 같은 글모음’ 이라는 홍보 문장을 읽고 책을 구입했었죠. 서른여덟 살이나 차이나는 젊은 애인에게 뒤라스가 남기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고, 그런 사랑을 했던 뒤라스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게 다 예요>를 통해서는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 관한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기로 했지요.


하지만 제 인생에는 뒤라스와 얀보다 중요한 것들이 백만 스무 개 정도가 있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 일은 자꾸 밀렸어요. 그러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의 출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얀’을 ‘뒤라스’라는 강에 밀어 넣은 책...이 곧 나온다는 소식을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설렜겠어요. 얀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고 뒤라스에게 빠져 공부도 포기하고 그의 작품들을 파기 시작했다잖아요. 그리고 5년 동안이나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데,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한 청년의 삶의 궤도를 바꿔놓았던 것인지, 제가 꼭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이탈리아의 작은 해변마을로 휴가를 떠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사라와 자크’, ‘지나와 루디’ 그리고 ‘다이아나’가 주인공이었죠. 다섯 살 아이들 둔 사라와 자크 부부는 ‘권태한 삶’을 살고 있고, 먹을 게 중요한 지나와 루디는 날마다 싸우면서도 서로를 죽을 때까지 사랑할거라고 하고, 독신인 다이아나는 그들 틈바구니에서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친구였어요. 이들이 휴가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늦게 일어나 바다로 수영을 하러가고, 밥을 먹고, 캄파리를 마시고, 다시 수영을 하고, 캄파리를 마시고, 공놀이를 하고, 비를 기다리며 헤어져 잠을 자는 거였죠. 하... 이렇게 나른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휴가라니!

그런데 그들 사이에 ‘장’, 당신이 나타나면서 나른함에 균열이 생깁니다. 당신은 강을 건널 수 있는 멋진 ‘배’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 보다 ‘사라’를 향한 당신의 ‘치명적인 시선’을 모두가 느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나른하고 지루한 휴가지의 풍경’처럼, 사라를 향한 당신의 시선도 ‘나른하게’ 처리 되요. 사라의 남편 자크 마저도 당신의 존재를 묵인합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그럴 수 있다는 듯. 이 글을 쓴 뒤라스는 ‘사라와 당신의 하룻밤’을 생략과 침묵으로 남겨둡니다. 책을 몰입해서 읽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백을 두었죠. 그러나 당신의 가슴에 사라는 점점 더 깊게 각인되고, 당신은 사라와 함께 ‘강을 건너’ 파티에 참석하길 원합니다. 사라가 당신과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기를!


책을 읽으면서 저도 열렬하게 바랐습니다. 사라가 당신과 함께 강을 건너가기를. 그 견디기 힘든 권태에서 벗어나기를! 그런데 사라는 루디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아무 설명하지 않아도 루디를 보는 것만으로 당신이 모든 걸 이해할 거라고요. 루디는 사라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이어 말합니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꽤 멋진 말이었어요. 어쩌면 ‘얀’이 뒤라스에게 빠진 문장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권태는 권태일 뿐’, ‘사랑이 되지 못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에게 사랑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고 헤어지며 위로받고 다치고, 다시 꿈꾸는 것... 그런 것이 제겐 사랑이었거든요.


그러나 뒤라스는 당신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을 통해 말합니다. ‘사랑’은 한 가지의 형태로 정의 할 수 없는 거라고. 사라와 자크 부부처럼 ‘권태를 품은 것도 사랑’이고, 산 속에 있던 할아버지처럼 죽은 아들의 시신을 상자에 넣고 파리와 벌레가 날려도 멍하게 있는 부인을 바라보는 것도 사랑이고, 식료품 주인처럼 사랑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어도 그 자리에 있어준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사랑이고, 가정부처럼 ‘현재’에 올인하며 정열적으로 뜨겁게 사는 것도 사랑이고, 당신처럼 어느 한 순간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사랑이라고.


그래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누구도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어쩌면 뒤라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사랑의 여러 갈래’였는지도 모르고요.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시 이 책을 펼쳐봐야겠어요. 그 때는 어떤 사랑을 마음에 담게 될지 궁금하네요.


나른하고 무료한 주인공들의 휴가에 균열이 되었던 당신, 당신은 강을 건너오지 않은 사라 때문에 상처받았겠지만, ‘강을 건너자’고 제안해준 당신 덕분에 저는 설레는 맘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어요. 강을 건널 ‘배’를 가졌던 당신이 내게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것으로 보였단 것도 고백합니다.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는 마시기를! 당신은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니까요!


자, 그럼 이쯤에서 글을 마쳐야겠네요. 그 전에, 소설 속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당신과 현실 속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하는 나를 위해 건배를 해야겠어요. 당신의 사랑과 나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당신의 캄파리잔과 나의 캄파리잔을 부딪치며, 굿바이를 전합니다. 안녕.


taki.jpg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마르그리트 뒤라스, 녹색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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