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이태석》을 읽고
신부님의 삶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신부님 선종 10주기에 맞춰 나온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이충렬, 김영사)이었지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앞부분만 보려고 펼쳤는데,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어 한 호흡에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와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한 《내 친구 쫄리 신부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톤즈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얼마 전에는 그가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챙겨보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몰랐던 신부님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저는 신부님이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의사의 길을 가려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고만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는 문장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부님이 전공의 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 대신 성당을 찾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속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시험은 봐도 되지 않았을까, 일단 시험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그 분 발 앞에 엎드려 세상을 향해 자라날 욕심마저도 봉헌하셨더군요. 이 사실이 제가 간과한 이야기의 출발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부산에서 태어나 소알로이시오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제가 몰랐던 사실입니다. 책을 읽으며 ‘소알로이시오’라는 이름을 만났을 때 저는 전율했습니다.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으니까요. 훗날 선교 사제가 되어 톤즈의 아이들을 만나러 갈 신부님께 세례를 베푼 사제가 세계 곳곳에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만든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이었다는 사실은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이 하느님 당신 계획에는 있었습니다.”라는 고백이었지요.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이 신부님 삶 안에서도 펼쳐졌음을 느꼈습니다. 의사가 되려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수사가 되고, 사제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톤즈로 가기까지 신부님 삶의 여정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계획들은 신부님께 주어진 ‘자유 의지’ 속에서 선택돼 더 빛을 발했지요.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의 선택 덕분에 말이에요.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서 지원했을 때 수도원 시설에 있던 청소년들이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지원자 수사님은 왜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님이 되려고 하세요?” 아이들은 의사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겠다는 신부님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신부님은 ‘의사보다 신부가 좋아서 수도원에 왔다’고 대답했지만 이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돌멩이’와 ‘다이아몬드’였지요.
아이들이 또 다시 ‘의사 말고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자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되 물었습니다. 길거리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떨어져 있으면 무엇을 집어들겠느냐고요. 아이들이 “당연히 다이아몬드죠!”라고 대답하자 신부님은 말합니다.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야.”라고요.
‘하느님과 청소년’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은 여러 과정을 마치고 톤즈로 향합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지요. 가난과 전쟁에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 속에서 신부님은 돈보스코 성인의 삶을 이어갑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성인, 신부님이 소속돼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의 창립자인 돈보스코 성인처럼 아이들 곁에서 살아간 것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공부하며 “청소년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며, 다이아몬드의 원석인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세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사랑 덕분에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갔습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고, 악기를 연습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부님은 완성된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발견된 병 때문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다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으니까요. 신부님의 죽음은 톤즈에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신부님과 우정을 나누던 아이들은 물론, 신부님께 치료를 받던 한센인들과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던 군인들까지도 신부님의 죽음을 애도했지요. 그러나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톤즈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린 제자들도 있고, 의료진이 된 아이들도 있었지요.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 중에 40여 명이 의료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당신을 기억하며 톤즈에 있는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하고 말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한 사람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2021년 겨울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서로를 향해 마음 한 조각 내어줄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요. 이런 시기에 사랑을 나누었던 신부님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온 것에도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그 이유를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이 《신부 이태석》을 읽으며 그 이유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신부님의 열 번째 하늘 생일을 기념하며 세상에 온 선물일지도 모르니까요.
돌멩이가 아닌 다이아몬드를 집어 들었던 이태석 신부님!
당신의 삶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들길,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반짝 빛나게 되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신부님께서 사제서품 성구로 선택하신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는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잊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도 기억해주시기를 전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음악인 청소년의 웃음소리’가 날마다 천국까지 전해지길, 그 음악을 들으며 신부님과 돈보스코 성인이 함께 미소짓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짧았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쫄리 신부님, 신부님이 발견한 다이아몬드가 온 세계에 빛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