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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Nov 19. 2022

어머니를 잃은 신부의 편지

편지책으로 읽는 교회 #11



리엘! 1월부터 12월 중에서 너에게 가장 고요한 달은 언제니? 샘에게 가장 고요한 달은 11월이야. 11월은 왠지 모든 생명이 깊은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달이거든. 아마도 찬란했던 가을이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달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그래서일까? 가톨릭에서 지내는 ‘위령성월’이 11월인 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위령성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잖아. 고요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는 달. 

     

리엘 너에게는 죽음이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경험하지 못한 세계’일수도 있고, ‘만나고 싶지 않은 때’일수도 있겠다. 샘은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어. 사촌 동생이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주일학교 교사를 함께 했던 선배가 투병하다가 하느님 곁으로 가기 했어. 엊그제 통화하며 곧 만나자고 약속했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지.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샘은 하느님을 원망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며 따지기도 했지. 하지만 하느님은 침묵하셨어. 도대체 왜 이런 아픔을 주시느냐고 물어도 그 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단다.      


샘에게 죽음은 ‘두려움’이었어. 누군가와 영원히 이별을 하고, 잊고 잊히는 것이었거든. 그래서 죽음이 ‘하나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두려움’이었어. 그런데 헨리 나웬 신부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죽음은 ‘그가 없는 삶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이야. 샘은 죽음이 ‘사라지는 시간’이라고 생각 했는데, 신부님은 ‘새로운 시간’이라고 하셨어. 신기하지?      


헨리 나웬 신부님은 예수회 신부님이셨어. 하버드대학교하고 예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많은 책을 남긴 작가이기도 하셨지. 신부님은 어느해 가을에 어머니와 작별했는데,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서 일상을 이루는 갖가지 일들로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셨대.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이 신부님 내면 깊은 곳까지 들어올 기회가 없었어. 몇 개월 후, 신부님은 봉쇄수도원에서 묵상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예감하셨대. 이제 ‘슬픔의 시간’이 펼쳐질 거라고 말이야. 신부님은 침묵에 잠긴 작은 방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어. 특별히 어머니를 떠올린 것도 아니고, 그 분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 것도 아닌데 그냥 혼자 있을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흘렀대. 신부님은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예감했어.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지. 신부님은 아내를 잃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그러면서 아버지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를 나눈단다.   

  

신부님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어머니가 빠져버린 행사를 치를 때마다 우리는 새삼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게 됩니다’라고 고백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6개월 만에 맞이한 부활절을 보내며, 부활절은 어머니와 더불어 축하하던 날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축하할 어머니가 없다며 쓸쓸해하지. 그러면서 ‘시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말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가 어떤 의미였는지 더 깊게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신부님은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아. ‘어머니가 없는 삶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입장’이 되었음을 깨닫고, 새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신부님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해. 홀로 사는 친구들의 외로움을 제대로 보게 되었고, 아내를 먼저 보낸 동료들의 두려움을 깊이 이해하게 되셨을 거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헨리 나웬 신부님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생기는 거였던 거야.      


샘은 신부님의 이 말 무척 감명 깊었어. 왜 내게 이별을 아픔을 겪게 하느냐고 하느님께 따질 때 침묵했던 그 분을 이해할 수 있었어. 하느님은 내게 이별을 아픔을 주시려고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없는 삶을 새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거였어.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이 제자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듯,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을 깨달았지.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고통이지만, 그것이 고통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거야.     


헨리 나웬 신부님은 《위로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와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묵상하고 기록하지. 혹시 언젠가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래? 누군가의 죽음 후에도 우리 삶에는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도 깨닫게 될 거야.     


<위로의 편지>, 헨리 나웬,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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