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큐레이터 Oct 10. 2022

네 명의 신부님을 키운 어머니의 편지

편지책으로 읽는 교회 #10



리엘! 너 혹시 ‘하늘나라의 구멍’에 대해서 들은 적 있니? 샘이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너에게도 들려줄게. 하느님이 급하게 지상에 내려오셔야 할 일이 있어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를 맡기고 잠시 외출을 하셨대. 베드로는 하느님이 맡긴 천국을 잘 지키기 위해서, 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었어. 그런데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거야. 이상하게 생각한 베드로가 하늘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지. 그러다 저쪽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걸 발견했어.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달려가 봤더니, 그 구멍 앞에서 성모님이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들여보내고 계셨대. “아이고, 실비아! 그래그래. 네가 묵주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단다. 어서 들어오렴.”, “아, 바오로! 반갑구나. 네가 전구해달라고 청하면서 하는 기도를 내가 들었어. 어서 이쪽으로 들어오너라.”하면서 말이야. 베드로의 생각보다 천국에 사람들이 더 많았던 이유는, 성모님 때문이었어. 성모님에게 기도했던 사람들을 성모님께서 모두 기억하고 천국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던 거야. 샘은 이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엄마의 마음을 가진 성모님’이 떠올라서 뭉클해. 자녀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 말이야.     


샘이 읽은 《네 신부님의 어머니》라는 책에도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가 나와. 바로 ‘이춘선 마리아’ 어머니야. 이 분이 1921년생이니까 리엘 너에게는 ‘증조 할머니’ 연배쯤 되겠다.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춘선 마리아 할머니는 신부님의 어머니야. 아들이 사제라는 뜻이지. 그런데 아들 한 명만 사제가 된 게 아니라, 무려 네 명이나 사제서품을 받았어. 딸은 수녀님이 되었고, 손주까지도 사제와 수도자가 되었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마리아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몫을 자녀들에게 주고 싶으셨대. 그게 ‘신앙’이었어. 할머니는 강원도에 있는 양양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며 첫영성체반과 견진반을 맡아 가르쳤고, 자녀들이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권유하셨어. 자녀들이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셨대. 할머니는 자녀들의 영혼이 굶어죽지 않도록 늘 하느님 곁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어.      


할머니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하느님께서는 네 명의 아들을 사제로 부르셨고, 할머니는 ‘네 신부님의 어머니’가 되었지. 아들이 신학교에 있을 때나, 사제가 되었을 때 할머니는 많은 편지를 쓰셨어. 안부 편지 끝에는 ‘모든 것을 성모님께 맡긴다’고 쓰셨고, 아들이 부탁한 ‘9일 기도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셔. 아들이 주임 신부님이 되어 보좌 신부님을 맞이할 때는 ‘후배 신부님들에게 꼭 존대를 하라’고 이르기도 하시고, 청소년들의 수호자 ‘돈 보스코’라는 세례명을 가진 아들에게는 ‘특별한 성인을 모시게 되었으니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셔. 


신부님들의 어머니가 쓴 편지 중에서 샘이 가장 좋아하는 편지는 막내 아들인 루도비코 신부님께서 쓴 편지야.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떠나던 날, 어머니께서 서품 선물이라며 작은 보따리를 주셨대. 어머니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풀어보라고 하셨지만, 신부님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그날 밤에 풀어보셨어. 그 보따리 안에는 신부님이 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한두 살 무렵에 입었던 작은 옷들이 들어 있었어. 그리고 어머니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쓴 편지 한 통이 있었지.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 기억하십시오.”라는 편지였어. 사제가 된 아들이 힘든 일을 극복하고,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말이었지. 샘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뭉클했어. 아기 때 입혔던 배냇저고리를 꺼내서 이리 저리 살펴봤을 ‘엄마의 마음’이 읽혔거든.      


이춘선 마리아 할머니는 매일 묵주기를 하고, 자신의 장례미사에서 부를 성가를 미리 선곡해서 가족들과 함께 부르셨대.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거야. 2015년 3월 11일, 마리아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어. 어쩌면 그날은 성모님께서 작은 구멍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입구까지 뛰어나와 마리아 할머니를 마중하셨을 거야. 늘 하느님 곁에서 생활하고, 성모님께 의탁했던 분이셨으니까. 


<네 신부님의 어머니>, 이춘선, 바오로딸


#천주교서울대교구 중고등부 주보 하늘마음 10월호에 쓴 글

매거진의 이전글 침묵으로 기도한 라파엘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