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큐레이터 입니다만1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틈 만 나면 편지를 쓰고,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의 매력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렇다고 내가 우체국에 근무하거나 우정국에서 파견된 사람은 아니다. (그들은 나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나는 그냥 편지지 위에 만년필로 손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나보다 먼저 앞서 간 사람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러나 좋은 것은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리하여 나는 사람의 예를 다하기 위해서 진심을 전하는데 편지만한 것이 없다고, 옛사람의 편지 속에도 희노애락의 삶이 있다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마치 성경을 읽고 기쁨에 넘쳐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들처럼 편지를 쓰고 읽으며 외치게 되었다. 편지를 쓰자고, 편지를 읽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편지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니자, 사람들은 나를 ‘편지전도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왠지 ‘할렐루야’를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이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편지를 쓰고 읽다보면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을 만큼 가슴 벅차 오르는 순간들이 있지만, 뭔가 더 명확하고, 새롭고, 의미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릿속에 ‘편지큐레이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박물관에서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큐레이터라면, 편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널리 알리는 나는 편지큐레이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내 이름 앞에 ‘편지큐레이터’라는 단어를 붙이며, 정체성도 재정립했다. 나는 편지큐레이터라고.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