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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an 14. 2023

내 인생에 편지가 시작됐을 때

- 편지큐레이터 입니다만2

내 인생에 ‘편지’가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겨울방학 숙제로 제출한 독후감이 우수작품으로 뽑혔는데, 그 작품이 서간체로 쓴 글이었다.  『소공녀 세라』를 읽고, 그녀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세라인 듯 집중하며 읽었다. 세라가 학교에 입학해 교장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받을 때는 기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마음도 덜컥 내려앉았다. 그 후 교장이 세라를 하녀로 전락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른다. 열 두 살의 소녀였던 나는 세라의 감정에 이입되어, 함께 분노하고 함께 기뻐하며 공감의 편지를 썼다. 덕분에 원고지 10여 장을 가득 메운 편지는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내게 상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내가 글을 써서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어쩌면 그때 내 인생의 텃밭에 떨어진 편지라는 씨앗은, 중고등학생 때 발아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있던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연습장 위에 못 다한 이야기를 적었고,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서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편지를 썼다. 친구의 생일을 카운트다운하며 100일전부터 하루에 한 장씩, 모두 100장의 엽서를 채워 선물로 건네기도 했고, 시험기간에는 친구들에게 ‘시험 잘 보라’고 응원편지를 쓰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편지쓰기를 좋아했는지 알려주는 사건은 ‘편지노트’사건이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 중에 S가 있었다. 나는 S에게 툭하면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는데, S는 내 편지를 좋아했지만 답장을 자주 주지 않았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건만, 편지 열통을 보내면 한 번 답장을 쓸까 말까한 S에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S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자기는 글을 쓰는 게 너무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답장을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S의 말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S가 글 쓰는 걸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S에게 답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지를 전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정말 빠르게 전해야 하는 내용만 편지지에 써서 주고, 나에 관한 이야기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들은 노트에 적기 시작한 것이다. 안네 프랑크가 ‘키티’에게 편지를 쓰듯, 나도 나만의 노트에 S에게 거의 날마다 편지를 썼다. 이 편지 노트는 3년 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졸업식날 S에게 여덟 권의 노트를 선물로 줄 수 있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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