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큐레이터 Feb 06. 2023

편지 할머니의 장례식 풍경

편지큐레이터 입니다만5


내가 편지큐레이터로서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는 ‘편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편지를 쓰고 읽으며 편지의 힘에 대해서 전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통나무로 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문 옆에는 <편지 도서관>이라는 푯말을 달고, 도서관 안에는 수많은 편지책과 편지지를 꽂아두고 싶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편지를 읽고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나는 그곳에서 편지를 쓰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내가 언제쯤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장례식 풍경이 있다. 일단, 영정사진 주변에는 국화대신 프리지아를 놓아야 한다. 프리지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니까 말이다. 입구에는 부조함 대신 편지를 넣을 수 있는 편지함이 있고, 그 위에는 내가 쓴 편지가 들어있는 상자가 있다. 편지는 받는 사람의 이름이 ㄱ,ㄴ,ㄷ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의 부고를 듣고 누군가 찾아오면 편지함 앞에 앉은 이는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상자 속에서 이름을 찾아 편지를 전달한다. 그 편지는 내가 <편지 도서관>을 지키며 내 장례식에 찾아와 줄 사람들에게 쓴 편지다. 나는 내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그와 나눈 우정을 편지로 남길 것이다. 그가 내게 베풀어준 고마운 마음에 감사를 전하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기바란다는 축복의 인사를 남길 것이다. 모든 편지는 내용이 다 다를 텐데 그것은 받는 사람을 위한 맞춤형 편지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찾아 온 사람들이 모두 개인 편지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내가 기억해내지 못한 이들이 나를 찾아 올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나는 ‘그밖에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라는 칸에 여러 통의 편지를 넣어 둘 예정이다. 이 편지들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내용이 되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진 그들을 위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손으로 직접 씀은 물론 예쁜 스티커나 말린꽃들을 붙여서 정갈하게 꾸미고 싶다. 


장례식장에서 편지를 받아 든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지만,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내 편지를 읽고 나에게 답장을 쓰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답장을 쓸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엽서나 편지지도 준비해둬야겠다. 나는 그들이 나와 나눴던 일 가운데 기뻤던 일이나 슬펐던 일은 물론 때때로 분노했던 일도 꺼내면서 나와 편안하게 작별할 시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생각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도내면서! 


나는 내 장례식이 지인들끼리 명함을 돌리는 시간이 아니라, 나와 맺은 우정을 기억하며 기쁘게 이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참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상의 여행을 마치며 내가 남긴 편지를 통해서 친구들이 나를 ‘편지 할머니’로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 속에 박제된 편지를 읽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