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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an 26. 2023

과거 속에 박제된 편지를 읽는 이유

편지큐레이터 입니다만

내 마음의 텃밭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편지는 새로운 가지를 만들었다. 그 가지의 이름은 ‘편지를 읽는 사람’이었다. 내가 편지를 쓰는 사람에서 읽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묘지명’을 읽은 후였다. 묘지명은 죽은 사람의 공덕을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것인데, 연암 박지원이 큰 누나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쓴 묘지명이 나를 울렁이게 했다. 그가 쓴 묘지명을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연암은 유쾌한 글을 쓰는 호걸이었다. 그러나 평소에 어머니처럼 따랐던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커다란 품을 잃은 가여운 사람이 되어 애잔한 글을 쓴다. 박지원은 ‘큰누나 박씨 묘지명’에서 여덟 살 때로 돌아가 시집가던 누나와 헤어지던 날을 그린다. 자기를 두고 누나가 시집가는 게 서러워 괜히 퉁퉁거리던 연암이 영원한 이별 앞에서 통곡하며 쓴 묘지명을 읽으며 나도 울었다.


그 후, 정약용이 막내아들 농아의 무덤 앞에 바친 ‘농아광지’를 읽으며 옛 사람들이 남긴 편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편지 속에서 지상에 남지 못한 ‘한 사람의 삶’이 보였기 때문이다.      

편지는 공문서와는 달리 사소하고 은밀한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는 개인적인 글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적을 수 있다. 편지가 가진 이 힘 덕분에 위인들조차 고상한척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희노애락을 적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교과서에서 만난 위인들을 감정을 지닌 ‘사람’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호걸로 인식했던 박지원이나 너무 높은 태산 같아서 범접하기 힘들어 하던 학자 정약용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남긴 편지 덕분이었다.


 나는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과거 속에 박제 되어 있는 사람들을 현대로 불러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이 세상을 다녀갔던 누군가의 삶을 편지를 통해 복원하고, 아주 오래 전에 이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날마다 샘솟는 갈망을 채우기 위해 나는 편지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편지책을 검색해 구입하고, 절판 된 책을 구하기 위해서 중고서점들을 찾아다녔다. 서재 책장에 편지책이 늘어 갈 때마다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뿌듯함과 함께 한숨도 깊어졌다. 저걸 언제 다 읽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편지책은 일반책처럼 후루룩 읽을 수가 없다.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 시간이 만만치 않다.


나는 오래된 편지들을 읽으면서‘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편지를 쓴 사람과 받는 사람, 그들이 편지를 주고받은 시대적인 배경을 대충이라도 알고 읽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을 때, 그가 조선시대의 실학자였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고, 천주교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으며, 강진에서 거처를 옮겨가며 생활하는 중에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500 여권의 책을 집필하고, 아들 둘을 강진으로 불러내려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고 편지를 읽으면 문장의 행간에서도 새로운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런 정보 없이 편지를 읽으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사람의 편지를 읽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편지를 남긴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라면 보다 쉽게 자료를 구하고 그에 대해 공부할 수 있지만, 무명에 가까운 사람이면 자료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에 대한 자료를 구하지 못하면 그가 살았던 시대 배경이라도 찾아서 공부를 하며, 왜 하필 그가 그 때 그런 편지를 썼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쉽지 않은 과정들을 거치면서 편지를 읽는 것은 다시 편지 쓰기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예전에 사람들이 이렇게 편지를 썼듯이 우리도 편지를 써보자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남겨보자고 말하기 위해서다. 누군가 세상에 남긴 편지를 읽고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던 그를 만나듯, 먼 훗날 누군가 내가 남긴 편지를 읽고 나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설령 내가 쓴 편지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해도, 그래서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내 편지를 읽게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건넨 편지 한 통이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과 축복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믿는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 편지 한 통이 물기 하나 없이 쩍쩍 갈라진 땅 같은 마음에 닿으면 감동의 비로 내린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촉촉해진 그 땅에 새로운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되어 한 생명을 살리게 된다는 것을.


- 다음에 계속 -



정약용이 강진에 있을 때 부인이 보낸 '붉은 치맛자락'에 쓴 편지 <하피첩> 소장처: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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