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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Feb 10. 2023

<유튜브를 보다가 편지를 썼다>

- 원고지 편지 수십통의 비밀 #편지큐레이터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멍 - 때리며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청년이 폴란드에 여행을 가서 한국말을 잘 하는 할머니를 만나는 영상이 나왔다. 맨발에 크록스 차림으로 기차를 기다리던 청년에게 베푼 '한국말 잘하는 폴란드 할머니'의 친절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수녀님'이었다.


유튜버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으나. 영상에 달린 수없이 많은 댓글이 그녀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급기야 수녀님의 소속과 이름까지 알려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댓글러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 유튜버는 편집하지 않은 수녀님 버전 30분짜리 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추가영상까지 다 보고, 그 수녀님의 소속 수도회를 찾아봤다. 사이트에 들어가 이리 저리 살피다 보니, 헛! 예전에 내게 메일을 보낸 수녀님과 같은 수도회였다. (병원 사목을 하시는 수녀님 한 분이, 원목실에 꽂혀있던 <기적의 손편지>를 보고, 너무 좋았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수도회에서 어떤 사목을 하는지 쭉 살피다가, 안동에 여성청소년들을 살피는 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책이 나오면 이곳에 한 권 보내드려야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수녀님이나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청소년관련 그룹이 어디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가톨릭 사이트에 들어가 온 수도회를 뒤져 여러 곳을 찾아냈다. 미혼모인 청소년들을 그들의 아이까지 함께 키워주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도 있었고, 가출한 여자 청소년들만 따로 보호하는 곳도 있었다. 가정이 무너진 아이들을 품은 곳도 있었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다이어리에 리스트를 적었다. 


출판사에 연락을 해, 책이 나오면 저자 증정용을 제외하고, 추가로 더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저러한 곳들에 좀 보내고 싶다고. 내 이야기를 들은 출판사 편집부에서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함께 하겠다며 책을 제공해주시겠다고 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리스트를 뽑았던 곳에 편지를 썼다. 담당자를 찾아내 그 분에게 맞춤!한 편지를 쓰고, 출판사로 달려가 책에 서명했다. 서명은 그 책을 읽을 청소년 친구들에게 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도, 길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하세요. 당신이 걸으면 길이 됩니다."


받는 곳에 따라 글귀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친구들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원고지와 봉투를 옆에 두고, 서명을 하다가 생각난 다른 곳들에게도 또 편지를 쓰고 서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서른 곳이 넘어갔다. 개인적으로도 보내고 싶은 곳이 있어 '내돈내산' 책을 구입해 여러곳에 또 보냈다.  


이 책 팔아서 돈 많이! 벌긴 글렀다. ㅋㅋ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길이 없다고 생각한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와 수업을 했던  <목요일의 작가들>이 그랬던처럼. 


돈은 다른 책 써서 벌면 된다. 나에게는 2033년까지 쓸 일곱 권의 책이 아직 남아있다. (#생각해보니_다_돈_안됨_주의

원고지의 편지를 쓰고 있는 <목요일의 작가>의 저자 /편지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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