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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달 Jun 25. 2023

아마도 나는 결혼이 하고 싶은가 보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남자,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오늘은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자기 개발의 날이었다. 말 그대로, ‘자기개발’을 목적으로 0.25개의 연차 소진만 하면 반차의 혜택을 주는 회사 차원의 복지 아닌 복지. 한달 전에 팀 내 동갑내기 친구들과 캠핑장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일 때문에 뒤늦게 끝나는 동료가 있어 회사 앞 카페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며 동료를 기다렸고, 덕분에 기다리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동료 매니저를 기다리던 중,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가는 A매니저를 만났다. -A매니저는 일전 함께 일하던 동료로, 현재도 같은 팀으로 발령 났지만, 다른 업무를 하다보니 자주는 못 보게 되었다-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는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사라지던 모습. 그 때는 그 모습이 나의 머릿속에 아른거리게 될 줄은 몰랐다.


회사 동료들과 방문했던 청계산 인근 글램핑장


 이후 동료들과 함께 청계산 즈음에 있는 캠핑장에 갔다. -사실 캠핑을 좋아하지는 않다보니, 캠핑장과 글램핑장의 차이를 잘 모른다. 어쩌면 글램핑장이었을지도- 더운 날씨였지만 회사 밖을 나와 고기를 구워 먹는 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해방감이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주말에 지방을 내려가야 하는 친구들이 있던 관계로,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모임은 파했다.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 않던 나는 기력이 다 하기 전에 모임이 파해서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일부 친구와는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지만, 혼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다른 지하철 호선을 택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근 보고 있던 넷플릭스 드라마 ‘빌리언스’를 보았고, 최근 늘어지던 에피소드와는 달리 보던 회차의 내용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다. 얼마나 흥미진진했으면 집에 돌아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한참을 보았으니 말이다. 


미국 Showtime 편성 | 데미안 루이스, 폴 지아마티, 매기 시프 등 주연의 드라마 '빌리언스' 


 푹 빠져 보던 ‘빌리언스’ 회차 에피소드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월스트리트 억만장자인 ‘엑스’와 검사인 ‘척’은 부인인 ‘웬디 로즈’와 각자의 목표를 두고 라이벌 구도이다. 서로의 부정과 비리를 가지고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이번 회차에서는 모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갈등이 봉합되는 에피소드였다. 위기를 극복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극 중 검사인 ‘척’과 ‘부인 ‘웬디 로즈’는 갈등을 극복하고는 부부로써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연이은 소송으로 가정이 파괴된 억만장자 ‘엑스’는 달랐다. 소송이 끝나고 돌아간 호화로운 집.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COO인 친구가 준비한 호화롭고도 환락이 가득한 파티였다. 여자들이 가득했고, 술과 마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 가자마자 나체로 그를 맞이하던 여성들과 욕조로 들어갔다. 마약과 술, 여자. 보통의 남자라면 꿈꿔 마지 않는 삶 그 자체이지 않은가! 하지만, 마지막 엔딩 씬에서 엑스는 욕조에서 미묘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들어있다. 


 사실 엑스는 억만장자임에도 향락을 멀리하고 아들 둘과 그의 와이프와의 삶에 충실한 가정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엑스의 표정은 행복 했었다. 연이은 소송으로 인해 부인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가정을 파괴되고 만 것이다. 극 중에서 엑스는 부인과의 다툼 과정에서 이런 대사를 한다. “나는 다른 억만자들과 달리 가정에 헌신하고, 당신 만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엑스는 향락 속에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정’이 가져다주는 온전한 행복과 멀어지게 된 것에 대한. 더불어 나 또한 그러한 공허함을 느꼈다. 이상하지, 나는 결혼을 해본 적도 없고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극중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서 공허함을 느끼는 모습이 낯설었다. 심지어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혼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억지로 몸을 이끌고 나가 헬스장으로 향하던 도중, 오늘 만났던 A매니저님의 가족이 떠오른다. 아이 때문에 개인 시간이 없다던, 남편이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던 불만은 생각이 나질 않았고, 나는 A매니저가 부러웠다. 영원히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을 만났고, 평생의 행복이 되어줄 아이가 있는, 가정을 완성한 A매니저님이. 그러다 문득 연락을 남겼고, 한 마디를 남겼다.


 "매니저님, 오늘 문득 매니저님이 부러워졌어. 어쩌면 나는 결혼이 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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