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30대 남자,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1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나와서 연인을 만나러 갈 참이었다. 계획형 성격 답게 나름대로 설계한 일정 하에 개운하게 운동을 끝마치고 집으로 와 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나름대로 단백질도 보충하고 씻으러 들어가려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 알람.
연인은 오늘 배가 아프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을 먹었는데도 낫질 않은 모양이다. 요즘 들어 자주 아프고 피곤 해하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 주중에 쌓였던 피로감이 주말에 몰려드는 탓일 게다. 그냥 집에서 쉬고 내일 보는 것을 제안했다. 토요일에 얼굴을 보고 일요일에 쉬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김이 조금 빠지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연인이 아프다는 것을.
아무튼, 약속이 파토 난 김에 지난주 사 두었던 족발을 데워 비빔면과 함께 먹었다. 엄마가 가져다 준 상추도 해치워 버렸다. 건강하게 끼니를 해결해 보자는 나의 의지는 오늘도 이렇게 꺾이고 말았다.
운동으로 흘린 땀을 씻어내려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밖에 나가 어디라도 갈까? 그래, 전시회 같은 곳을 가는 것도 좋겠어.”, “아냐, 내일 활동하려면 오늘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도 좋지.” 여하튼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 후자의 선택을 하였고, 주중에 이어보던 넷플릭스 드라마 ‘빌리언스’를 연달아 보았다.
이렇게 하릴없이 주말을 보내고 나면 저녁시간 즈음해서 어김없이 허무감이 찾아오곤 하는데, 오늘도 그랬다. 보통 해가 지고 난 저녁에야 찾아오는 이 허무감은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찾아왔고, 덕분에 창문 너머로 뉘엇뉘엇 넘어가는 해도 볼 수 있었다. 타오르듯 붉어진 하늘, 예뻤다. 어둠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 맹렬하게 타오르는 하늘, 내가 좋아하는 하늘.
문득 생각이 많아졌다. 이유 없이 지난 몇주간 머리를 멤돌았던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최근 SNS를 통해 지난 인연의 결혼 소식을 간접적으로 접했다. –일부는 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레 짐작한 것도 있지만- 기분이 묘했다. 젊은 날 나와 맹렬히 사랑했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와 남은 삶을 약속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어린 날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나’ 보다는 그저 나 자체가 소중했고, 이러한 마음은 나는 평생 비혼으로 살겠노라는 비혼주의 결심으로까지 이어졌으니까. -가장 별로인 것 같았던 것은 이 사실을 당시 만나던 연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 만난지 올해로 6년. 그러니까, 그녀들은 나와 헤어지고 나서 최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겠다. 빌어먹을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것인지…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는 달리 이타적이고,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그 사이에 내 성격도 많이 변했다. 날카롭던 그 시절과는 달리 조금은 무던해졌고 -이 건 어디까지나 ‘내피셜’ 일 수도 있으므로, 객관적인 시각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겠다- 이제는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삶을 가꾸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어쩌면’ 과거에 얽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망상이 잦은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의 나와 그때의 그들과 만났다면, 사진 속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연’ 이라는 단어도 있지 않은가.
오늘의 이야기는 이기적이고, 어쩌면 조금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만, ‘후회’ 가 아닌 ‘반성’ 이라는 타이틀로 내 자신에 대한 자위를 해 보는 것일지도. 그들이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 나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