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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Jun 11. 2021

7. 청년은 상식적인 분위기를 기대한다

헌병은 서서 생각한다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공군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낭만적인 사람은 단지 막연하게 하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서 공군에 입대한다. 또 어떤 야망에 찬 사람은 전투기와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있으리란 로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투기처럼 압도적인 것들은 꽤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여러 이유 중에서도, 청년이 육군보다 3개월이나 더 긴 복무기간을 감수하게끔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상식적인 분위기’와 ‘덜 구르는 근무환경’에 대한 기대이다.  




이제 막 입대 영장을 받은 청년의 눈에는 지금껏 보이지 않던 몇몇 기사들이 들어온다. 기사로 접하는 군대의 모습은 갖은 악폐습과 사건·사고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런 기사들에는 육군이나 해병대의 이름이 유독 자주 거론된다. 통상 공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젠틀함이다. 젠틀해 보이는 공군에 입대하면, 젠틀한 선임과 젠틀한 후임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현실로 맞닥뜨린 입대의 공포는 이성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만다. 온전치 못한 이성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기에 이르고, 이윽고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아아, 나는 젠틀한 사람이 될 테야.’    


공군의 젠틀한 이미지는 ‘상식적인 분위기’와 ‘덜 구르는 근무환경’을 연상시킨다. 이 이미지는 먼저 입대하고 전역한 병사들이 경험담을 통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공군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의도적으로 쌓아온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이미지와 실제는 얼만큼 일치할 것인가. 나훈아와 조인성이 공군을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일까. 이 둘은 이미지의 소비자인가, 생산자인가. 그렇다면 청년은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고 봐도 좋을까? 아니, 우리는 이른바 ‘상식’과 ‘구르기’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국가의 부름을 받은 청년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분위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상식적인 것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내용과 외연을 파악하기 어려운 종류의 관념이다. 예를 들면, 어떤 병장은 갓 전입 온 이병이 일과 후 시간에 부대 ‘도서관’에 가는 것이 아니꼬울 수 있다. 요즘 것들은 빠져가지고 말이야. Latte is horse, 상병쯤은 돼야 도서관에 가고 그랬지 않았던가. 기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병장은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기에 이른다. “도서관은 상병 이상부터야!” 



도서관 출입에 관한 어떤 공지사항도 발견하지 못한 신병은 생각한다. 과연 저 선임의 말이 사실일까? 그러나 그의 허술한 위엄은 처음부터 모순된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왜 같은 부서인 나만 도서관 밖으로 불러낸 것인가.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일병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병장이 돼서도 권태에 빠지지 않고 도서관에 나왔던 그 선임은 왜 그런 말을 했던가.  




내가 속했던 작은 부대에서, 헌병은 정문의 출입통제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문근무는 항상 2인 1조로 이루어졌는데, 두 명 중 한 명은 선임, 한 명은 후임으로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선임 근무는 누가 통과하고 통과할 수 없을 것인지, 누가 대기하고 대기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로, 그날 내려온 문서, 정기출입자 등의 정보에 기초하여 실질적인 판단을 내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진다. 후임 근무에게는 미처 자동화되지 못한 정문과 출입증 교부 체계의 손과 발 역할이 주어진다. 정문 밖에 누가 도착하면, 신분과 목적을 알아오고, 그 정보를 선임 근무에게 전달하고, 선임 근무의 지시에 따라 정문을 개방하면서 출입증을 교부한다.


어떤 날은 출입자가 많아 정문 초소와 정문까지의 내리막을 끊임없이 내리락 오르락해야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도 출입하지 않아서 단지 정문 초소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 불편한 선임과 채 두 평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수 시간 동안 마주하는 일은 어깨에 맨 총의 무게만큼이나 후임을 짓누른다. ‘도서관 계급제’를 선포했던 그 선임은 모든 후임 근무의 기피대상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선임의 마지막 근무를 함께하게 되었다.


본인 위주의 기강을 요구하면서도 소심함을 숨기는 데는 실패한 작은 독재자는 비상식의 상징과 같았다. 그는 전역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그 좁은 초소 안에서 내밀한 속내를 터놓았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군생활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 욕심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했던 그는, 싫은 소리를 하고 난 다음 직접 그것을 포장하거나, 대신 포장해줄 든든한 우군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지막 근무에서 그는 군생활 중 좋은 관계를 쌓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으나, 너무 늦은 후회였다. 


그는 전역하는 날 아침에 동기들과 함께 역으로 향하는 부대 버스를 타지 않았다. 새벽 일찍, 자가용이 정문 앞에 도착했고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나름의 방식으로 2년을 희생한 공간에서 도망치듯 떠났다. 새벽 근무를 서던 나는 이번에도 원치 않았지만, 그 슬픈 광경을 목도했다. 비상식적인 인간이 배제되는 이 곳은 역시 상식적인 공간인가. 그가 후임이던 시절 통용됐던 상식이 그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 기강의 외연이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에, 그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그가 너무 억울한 과거를 지녔던 것은 아닐까. 아니, 내가 본 것은 저 사람의 부덕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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