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은 서서 생각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절정(絶頂)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이발쟁이에게/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정말 얼마큼 작으냐...
병영생활 상담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로 연락하면 상황이 개선될까?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서투른 대처로 결국 부대에서 가십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혹은 ‘객관적인’ 상황을 ‘조사’ 한 결과, 내 고통을 어리광으로 치부하지는 않을까. ‘전속’을 요청하면 사고유발 위험이 높은 병사로 낙인찍히지는 않을까. 나 혼자 구원받으면, 나는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