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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Sep 24. 2023

회사원의 바리스타 일기_0

우리 동네 바리스타

주말 아침, 조용한 시장을 따라 상인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를 지나 시장 어귀로 나오면 바로 옆 건물 4층에 내가 일하는 카페가 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벽면 가득 드리워진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어 밤새 이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둠과 적막을 몰아낸다. 동쪽을 향한 넓은 창으로부터 아침의 빛과 공기가 들어온다. 개점했지만 당분간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이 시간의 조용한 카페를 홀로 오롯이 즐긴다.




주말 한나절 파트타임으로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약 두 달의 시간이 지났다. 원래 단골로 찾던 가게가 확장하며 그곳의 주말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된 것이다. 주말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음껏 마시면서 중간중간 일이 없을 때는 공부도 하고 책도 읽을 요량이었다. 평일에 매일 출근 후 주말에도 일을 한다는 것이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카페에 나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그러다 손님이 오면 커피도 내려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을 갖자-라고 마음먹으니 부담을 살짝 덜 수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아 실제로 그런 느낌으로 두 달간 주말은 카페에서 보내고 있다.


사장님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가게의 확장과 파트타이머 고용 계획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럼 제가 집도 가까운데 주말에 시간 때우는 겸 카페 나와서 일하는 건 어떠세요?"라는 별 고민 없이 던진 말에 사장님도 큰 고민 없이 덜컥 승낙하셨다.


사실 전혀 생각 없이 결정한 일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내가 사는 동네'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한 동네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식당이 동네 사람들의 식사를 해결해 주고, 주인의 생계를 해결해 주며, 동네의 사랑방도 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아마도 어디로 이사를 가든 단골 가게를 꼭 만드는 이유는 그런 동경이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접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동네에 작게 전시를 해볼까하고 막연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그렇게 나의 '우리 동네 OO 프로젝트'는 실현하지 못한 바람으로 남아 마음 한편에서 조차 희미해졌는데, 마침 사장님의 구상을 들으며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 구상이란 동네에서 원재료를 공수하고, 동네의 사람들이 일하며, 또 동네의 사람들이 마음 편히 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고민의 시간이 길진 않았더라도, 나의 바람과 결이 맞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아마 사장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기에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또 어느 정도는 살짝 얼렁뚱땅 시작한 일이지만, 얼렁뚱땅 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출근하면 항상 오늘의 원두 라인업을 체크하고 한 잔씩 내려 마셔본다. 로스터리로 시작한 우리 카페는 다양한 원두를 들여와 볶고 매주 그 종류가 바뀌기 때문에, 나도 주말마다 매번 새로 접하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 어떤 맛과 향이 나는지, 어떻게 손님에게 전달해야 될지 미리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손님으로 우리 카페에 왔을 때 느꼈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비슷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물론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만족을 양껏 취하는 부분이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 카페에 처음 방문했을 때, 다양한 매력을 가진 커피를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매료되었다. 잘 나가는 카페들처럼 인테리어가 예쁘거나, 인기 있는 메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제각기 개성이 뚜렷한 여러 종류의 원두가 있다. 그중 하나를 골라 잘게 갈아서 필터 위에 올린 뒤에 뜨거운 물을 정해진 양,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천천히 부어준다. 커피가 만들어지면 미리 데워두었던 잔에 따라서 막 내린 온도 그대로의 커피를 마셔본다. 천천히 커피의 향을 맡고 한 입 머금어보면 그 커피만의 독특한 향과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으레 잡힐 듯 말 듯 코나 혀 끝을 스치고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렇기에 커피를 즐기고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기쁘고 충만하다. 원두 라벨에 쓰인 컵노트가 느껴지지 못해도 괜찮다. 고요한 가운데 살며시 내게 전해지는 느낌, 그것이 막연하더라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커피의 매력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아마 앞으로 나의 바리스타 여정이란, 이 어렴풋한 감상을 나의 말로 옮겨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부터 쓸 글은 그 길 위에서 남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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