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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Feb 07. 2021

텃밭과 함께하는 식탁 _ 21년 2월 1주

언니네 텃밭 체험기 그 첫번째 여정

 재택근무 횟수가 많아지면서 밥 해먹고 사는 것이 나에겐 주된 고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복작복작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것들로 잘해 먹고 다니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요리의 내공이 부족하다 보니 늘 찾는 것만 찾게 된다. 익숙한 것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니까. 다른 사람들 뭐 먹나 궁금해서 요리 브이로그 같은 것들도 많이 참고하는 편이지만, 뭔가 더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제가 필요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전의 다양한 글에서도 기록했다시피 나란 사람, 제철에 목매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제철인지, 신선한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매번 네이버에 의지할 수는 없는 법. 특히 철을 타는 식재료들은 일상적인 것들보다 난이도를 더 타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반대로 말하면 그래서 일상 식재료가 아닌 철을 타는 식재료가 되었나? 싶기도.)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바로 '언니네 텃밭'에서 하는 농산물 꾸러기 받기.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들이 건강한 방식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의 농사를 지향하는 공동체인데, 몇 년 전 사회적 기업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이다. 사실 요즘엔 워낙 질 좋은 유기농 농산물을 살 수 있는 채널이 많은데, 그래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제철 꾸러미였다. '제철 꾸러미'는 소비자와 특정 지역의 생산자 공동체와 매칭되어 그 공동체에서 생산하는 제철 농산물을 원하는 주기에 따라 (1주 1회 혹은 2주 1회) 정기 배송받는 프로그램이다. 꾸러미들을 보니 건강한 방식으로 생산한 두부, 계란부터 제철 채소와 과일, 그리고 농산물로 만든 여러 가지 생산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솔직히 가격은 꽤 비싼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철 채소를 그때그때 보내준다는 신선함과 셀렉션의 다양함 때문에, 한 번쯤 꼭 체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체험이라기보다는, 랜덤한 재료를 가지고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나에겐 재미있는 도전에 가깝지만. 우선 아까운 농산물을 못 먹고 버리는 사태가 없도록 하기 위해, 배송은 2주 1회, 1인 꾸러미로 신청했다. 이제부터는 2주에 한번, 이것들을 가지고 어떤 것들을 먹는지 기록해보려 한다. 보내주는 이들이 성실하게 땀 흘려 키운 소중한 농산물이 박스에 담기면, 그 이후로 예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먹는 이의 몫. 잘해보자! 

(사진은 먹기 전에 급하게 찍어서 정말 엉망이다;;;) 




2월 꾸러미 구성

좀 더 예쁘게 찍을 걸 그랬나?

유정란 5개, 우리콩두부, 데친 토란대, 무, 대추, 냉이, 쪽파. 

두부와 계란은 대부분 기본으로 제공되는 듯했다. 냉이와 쪽파 같은 걸 보면 엄청나게 신선하다. 



요리들 

무, 두부

  신선한 두부의 맛을 보고 싶어서 두부를 약간만 구웠다. 가마솥에 불을 때서 만드는 두부라는데, 시판 두부처럼 단단하지는 않아도 그 맛이 정직하고 고소하다. 무는 그 기본 맛을 가장 살릴 수 있는 음식으로 빠르게 소진하고 싶어서 잔뜩 무생채를 무쳤다. 무를 절이지 않고 액젓을 많이 넣어 만드는 백종원 아저씨의 방식을 채택했다. 아직 김치 레벨까지는 못 가는 요리 꼬꼬마지만, 역시 내 손으로 무친 게 맛있다. 두고두고 먹는데 더 맛있다.



냉이, 두부, 무, 토란대

내게 어려운 식재료 1번 냉이. 그러나 냉이와 맛있는 두부가 왔으니 메뉴 선정이 쉬웠다. 봄내음 가득 풍기는 된장찌개. 냉이를 처음 손질해보았다. 흙을 털어내기 위해 잔가지를 손질하고 물에 담가 두었다. 이전에도 대충 씻어서 먹은 것 같은데... 흙에 있는 유기질을 많이 섭취했던 것 같다... 내게 어려운 식재료 2번 토란대. 토란대는 우리 집에서도 많이 먹는 식재료는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데쳐주셨다! (데치지 않은 것은 손질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들기름, 들깨가루와 쪽파를 넣고 조물조물 무쳤는데 내가 좋아하는 고소하고 슴슴한 반찬 그 자체다. (비슷한 계열로는 고구마순, 고사리 등이 있다.) 말캉한 식감이 너무너무 좋아서, 만들어놓고 주방에 서서 몇 젓가락을 그냥 먹어버렸다. 이 날 끼니는 모든 반찬이 핸드메이드. 오랜만에 정통 한식.



냉이

뻔한 느낌 말고 양식으로 먹고 싶어서 만든 냉이 파스타. 양식에서 파슬리나 버섯처럼 향이 강한 채소들을 곧잘 쓰는데, 냉이도 한몫할 수 있을 것 같다. 향긋하면서도 산뜻한, 개성 있지만 조화로운 봄의 향기. 냉이를 한 움큼 넣었는데, 볶고 나니까 너무 줄어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감칠맛을 주기 위해 앤초비 소스를 약간 추가했다. 이렇게 한 번 더 먹었는데, 베이컨을 새우로 대체해도 괜찮았다. 링귀니 면으로 만드는 오일 파스타는 정말 사랑이다.



쪽파

 쪽파를 쫑쫑 썰어 부재료로 잘 쓰긴 하지만 시들해질 때까지 두는 게 아까워서, 싱싱할 때 해물파전 양껏 부쳤다. 다른 건 하겠는데 부침개 류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뒤집기도, 바삭바삭하게 굽기도 맘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결대로 쭉쭉 찢어 맛있게 먹었다.



어려운 식재료 3 대추. 대추차를 만들어 먹었다. 이것에 대한 것은 따로 포스팅.



 남은 무를 활용한 고등어조림. 한식은 다 좋은데 식단에 단백질이 너무 없다. 탄수화물은 밥 대신 파전으로 대신하고 삼삼하게 짜지 않게 만든 고등어조림의 순살을 열심히 흡입해본다. 고등어조림에서 고등어보다 맛있는 것은 역시 달짝지근한 무. 생채로 먹었을 때의 알싸하고 상쾌한 느낌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뭉근하고 다정한 게 완전히 겨울 음식이다. 문득 지난겨울 제주도 여행이 생각난다. 2인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한 갈치/고등어 조림에서 산처럼 쌓아 나온 조림을 혼자서 묵묵하게 클리어했던 그날. 역시 나의 주 종목은 고기보단 생선인 걸로.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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