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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Oct 24. 2020

꽃게탕

삶은 고요하지 않다. 삶은 난리다.

준비물

꽃게 3마리, 무 한 줌, 양파 1/2개, 파 한 대, 콩나물 한 줌, 쑥갓이나 미나리 한 줌, 홍고추와 청양고추 각 1개, 애호박, 취향에 따라 버섯

양념장 된장 1큰술, 고추장 0.5큰술, 새우젓 1큰술, 고춧가루 1.5큰술, 생강 1 티스푼, 맛술 4큰술, 육수(멸치, 다시마, 건새우... 나는 간편하게 만들어진 다시팩을 씀)


만드는 방법

1. 건새우, 멸치, 다시마 등과 물 900ml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2. 무, 양파, 파, 콩나물, 미나리, 고추, 애호박을 손질한다.

3. 꽃게를 손질한다.  

    활 꽃게라면 냉동실에 잠시 넣어 기절시킨다. (하지 않으면 정말로 손질하기가 어렵다.)   

    칫솔을 이용해 구석구석 문질러 준다.  

    배 쪽 배딱지(세모나게 생긴 부분)를 잡아당겨 잘라준다.  

    배딱지, 등딱지 연결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힘을 주어 쪼개 준다.   

    몸통에 붙어 있는 꽃게 아가미를 제외해준다.   

    등딱지를 제외한 꽃게를 취향에 따라 4등분 혹은 6등분 해준다.   

    집게발을 제외한 다리 끝을 잘라준다. 먹을 것이 없기도 하고 양념이 속으로 더 잘 밴다.  

4. 새우젓, 고춧가루, 생강, 맛술을 넣고 섞어준다.

5. 육수에 된장, 고추장을 더해 풀어준다.

6. 무, 양파, 콩나물, 애호박을 먼저 넣는다.

7. 손질한 게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8. 소금으로 부족한 간을 맞춘 뒤 파, 미나리, 홍고추, 청양고추, 버섯을 넣어준다.



 음식에 대한 시(詩)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역시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일 것이다. 게장이 숙성되는 과정을 서정적인 시어들로 가만가만 녹여내고, 또 그 체념한 듯 고요한 게의 마지막 대사는 또 뭐란 말인가.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라니... 이 시를 한 번 접하면 당분간 게 요리, 특히 간장게장은 먹기가 거북해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게라는 건 그런 건 줄 알았다, 직접 요리해보기 전까진.

 '햇', '활', '제철'에 사족을 못쓰는 나란 사람,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톱밥 꽃게를 보고 말았던 것이었다. 마침 날씨도 쌀쌀한 것이 따끈하고 달큰한 국물에 밥 석석 말아먹고 싶기도 했고, 마침 전복장으로 남은 간장이 아깝던 차였다. 안도현 시인에 따르면 간장게장은 살아있는 게로 담그는 듯 하니, 몇 마리는 가져다 장을 담그고 몇 마리는 꽃게탕을 끓여야겠다 싶었다. 한 번의 장보기, 하나의 재료 선정으로 여러 가지 욕구와 필요가 충족된다는 것은 정말 흡족스러운 일이었다. 몇 마리를 살까, 어떤 놈을 데려올까 고민하던 그때까지도 게는 잠들어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게를 깨끗이 씻으라는 레시피의 명에 따라 게를 개수대에 내려놓는 순간, 갑자기 게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팝핀을 춘다. 막춤을 춘다. 나의 집게를 본인의 집게와 연결하여 손에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집게가 아닌 정말 나의 손이었다면 나 또한 브레이크를 췄겠지. 음... 미쳐 날뛰는 게들을 보면서 꽃게탕 레시피를 검색하던 핸드폰을 들어 검색어를 바꾼다. '꽃게 손질'에서 '꽃게 기절'로. 꽃게를 기절시키려면 냉동실에 잠깐 넣어두어야 한다는데, 냉동실에 그대로 넣을 수는 없으니 아무튼 어떤 그릇에 넣는 과정이 있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꽃게를 들어 락앤락 통에 넣어두려는데, 꽃게가 두 발을 들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꽃게와도 아이컨택이 가능하단 걸 처음 알았다. 포켓몬스터에서 '킹크랩'이라는 포켓몬을 야생에서 만났을 때 대결 구도로 두 발을 들고 덤비려는 포즈와 똑같았는데, 여기서 포켓몬스터는 나름대로 고증이 되어 있더라는 것을 알았다.

 적당한 시간 이상으로 얼리지 않으면 얼었다가 다시 일어나 더욱더 격한 팝핀을 춘다는 이야기가 있길래 꽤 꽁꽁 얼려둔다. 그 사이에 야채를 손질하는데 정말 평화롭지 않을 수 없다. 고요한 정물의 채소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칼질과 목욕을 얌전히 기다린다. 평화의 시간 뒤 얼어버린 게를 꺼내 문질 해준다. 혹시라도 깨어서 움직이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뚜껑을 따고 발을 잘라준다. 이제부터 그 게는 활 꽃게가 아니고 반 냉동 게 혹은 냉동 후 해동 게라고 할 수 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미쳐 날 뛰던, 정말 개수대에 구멍이라도 있으면 하수관을 통해서라도 도망칠 것 같았던, 오로지 삶을 위해 투쟁하던 그 게는 이제 얌전하게 준비 그릇에 누워, 아니 놓여 있는 식재료 중 하나가 되어 버린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그렇게, 고요하고 우아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때로는 상대방을 찔러 피를 내고 더러운 수챗구멍으로라도 기어가 버리고 싶은 것이 삶의 양태다. 어쩌면 그것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생존하기 위해 깊은 내상과 질병과 투쟁하는 모든 중환자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혹은 '밥 벌어먹고살기 위해',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너저분한 일들과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모든 직업 종사자들의 모습일 수 있다. 아아,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하다면, 체념하고 거룩히 간장 속에 엎드려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사이에는 그렇게 생태계의 잔인한 사슬이 존재해 버린다.

 처참한 싸움 끝에 얻은 국물은 달큰하고 따끈했다. 안도현 시인의 언어에 비유하자면, 노을이 붉게 지는 저녁 시간이라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던 우리 집 꼬마가 아동 바동 싫다고 버텨도 한쪽 팔을 꽉 쥐고 집에 데려오는 그런 형국이려나. 그렇게 사납고 딱딱하던 갑옷 속에는 그렇게 보드랍고 달콤하고 하얀 속살을 숨겨놓고 있었다. 국물의 그런 단맛, 감칠맛이 함께하는 은은한 단맛은 게라는 재료만이 낼 줄 안다. 전쟁 같은 나날들을 위로하는, 참으로 값진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 요리 디스플레이의 핵심은 역시 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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