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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Oct 28. 2020

매생이 굴국

철분이 부족한 그녀에게 필요한 부드러움

준비물

매생이 한 덩이(120g), 굴 한 봉지(250g), 쌀뜨물 대략 700~800 ml, 굵은소금, 참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국간장 1큰술, 액젓 1큰술, 소금


만드는 법

1. 굴에 굵은소금과 물을 넣고 흔들어 씻는다. 여러 차례 물에 헹구고 잔여물이 없으면 체에 밭쳐 놓는다.

2. 매생이도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구어 체에 밭쳐둔다.

3. 참기름에 매생이를 볶는다.

4. 적당히 볶았다 싶으면 매생이가 잠길 정도의 쌀뜨물을 넣는다. (육수를 따로 내어 쓰기도 하던데 최대한 간편하게 해 본다.)

5. 가장자리가 끓어오르면 굴도 함께 넣는다. (두부나 무를 넣기도 하지만 최대한 간편하게 22)

6. 국간장과 액젓으로 간을 한다.

7. 마늘을 넣고 끓이다가 나머지 간은 소금으로 한다. (국간장과 액젓으로도 어느 정도 맞긴 한다)



 인간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사회적으로 정의되거나 발생하는 사회적 여자로서의 그 모든 것은 어느 정도 환경적인 영향이 있다고 치더라도,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것은 여자인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것에서 오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월경 주기이다. 밥맛 떨어지는데 요리 브런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거북해도 하시려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 여자의 영양과 식습관은 무조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절반이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개인차가 있는데, 나는 많은 이들처럼 단 것을 찾게 되는 편은 아니다. (애초에 평소에도 단 것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이기도.) 오히려 그 기간이 되면 입맛은 깔깔해지고, 체력과 면역력은 급격히 하락하며, 체온이 고장 난 보일러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철분의 부족으로 가벼운 어지럼증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땐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좋은', '필요한' 음식을 찾게 된다.

 가장 즐겨 먹는 것은 아무래도 해조류. 거친 입맛에도 부드럽게 감기고 풍부한 철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따뜻하게 조리해 먹는 방법이 많아 즐겨 찾는 식재료이다. 그 시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음식보다는 가볍고도 영양이 많은 음식을 찾게 된다. 보통은 가장 만만한 미역국을 먹기도 했는데, 날이 부쩍 추워지고 미역국보다 더 뜨끈한, 극강의 부드러움과 뜨거움을 가진 음식이 없을까 생각하다 떠올렸다. 매생이국을.

 본가에서 엄마가 후루룩 끓여 주는 것을 먹어보기만 했지 직접 끓여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정말이지 간단하고 심플할 수가 없다. 전반적인 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진수성찬처럼 여러 식재료를 늘어놓고 정성 들여 조리하는 멋들어진 음식은 그저 사치. 가장 기본의 버전으로 간다면 (그리고 집에 간 마늘만 있다면) 심지어 칼질 하나 필요가 없다. 도마와 칼을 쓰지 않고 그저 바다내음 나는 부드러운 두 친구를 살살 씻기기만 하면 된다. 매생이는 미역과 다르게 불릴 필요도 없다. 도대체 이런 걸 옛 조상들은 언제부터 먹으려고 시작한 것일까? 우리가 식재료로써 만나는 단위도 개체 하나하나라기보다는 한 '뭉텅이'에 가까워서, 바다에서 보면 개별 종으로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온몸이 힘든 나를 위해 뭔가를 해 먹어야겠고 또 배달음식의 거북함은 느끼고 싶지 않았던 그날, 이 조리 과정부터가 힐링이며 위로였다.  

 단순한 조리 과정에 비해 맛은 또 얼마나 다정하고도 따끈한지. 해산물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별로 손대고 싶지 않은 비주얼과 바다 내음이라지만, 친 해산물 파인 나에게는 속 편하고 친근한 맛이다. 바다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내 몸 안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매생이에서는 김이 나지 않아 그 뜨거움을 안에 숨기고 있어 입을 데기가 쉬운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운 사위가 오면 내어주는 메뉴라고도 하는데, 어차피 기운이 없어 허버 허버 숟가락질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에 찰떡같은 음식이다. 사위는 철분이 부족할 일이 많지는 않으니 입천장만 데고 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려나? 무튼 '뭉근함' 류의 다른 음식들, 그러니까 콧물같이 (오늘 정말 비위 상하는 내용이 많다..) 흘러내리는 각종 수프류 음식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고 또 영양가 넘치는 게 바로 매생이국이라고 생각한다. 밥이라도 말아서 홀홀 마시면 참 편안하고, 으슬으슬한 몸에서 어느새 땀이 배어 나온다. 중간중간 숨어있는 보석 같은 굴의 향기는 또 어떤가. 매생이의 괴랄한 비주얼에 호불호의 끝을 달리는 식재료가 추가되었다니 이 음식의 난이도를 더더욱 높이는 요인이지만, 가끔은 또 생굴보다도 이렇게 익힌 굴의 차분한 느낌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강렬한 바다내음과 미끌거리는 촉감은 차가운 식재료라는 느낌을 많이 주지만, 익혀보면 또 고소한 풍미가 배가 된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무엇보다 그 자신의 회복이 최선이다. 아직 출산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월경이라는 건 출산의 티저, 아니면 아주 높은 배율로 축소한 버전 같은 거 아닐까. 그 임팩트는 짧고 작지만 어쨌든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인것은 확실하다. 어차피 이렇게 태어나버린 것, 적어도 몇십 년 동안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역국, 또 미역국을 먹으며 필사적으로 산후조리하는 산모처럼, 한달에 한번은 특히 나 자신을 챙기고 나 자신을 먹이자, 기왕이면 양질의 방식으로. 특히 더더욱 부드러운 방식으로.

 

어떻게 찍어도, 어떤 인스타그래머가 와도 맛있어 보이지 않는 음식이라는 걸 나는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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