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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Dec 26. 2020

삼겹살

요리로서의 삼겹살에 대한 고찰

준비물

삼겹살 및 목살, 마늘, 후추, 소금, 쌈채소, 쌈장, 취향에 따른 곁들임 반찬들 그리고 소주


만드는 법

너무 작지도 않고 세지도 않은 불에 열심히 굽는다.

요리하는 사람이 굽는 동안 앉아있는 사람은 눈치 없이 다 먹어치우지 않도록 유의한다.


※ 가을에 써 두고 지금서야 발행하게 된 글. 이 글에서조차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전에 써 두었다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게 좀 서글프고, 벌써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야외에서 바람 쐬기 좋은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계절, 이른 아침과 쨍한 한낮 그리고 밤에도 야외 활동이 가능한 날들은 아주 금방 지나가버린다.  못내 아쉬울까 봐 짧은 주말여행에 나선다.

 며칠 전부터, 아니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열심히 서치한 맛집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맛집들도 좋지만, 또 이 계절의 여행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야외 바비큐. 이 계절에는 꼭 저녁에 야외에서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숙소를 고른다. 관광 일정이 대충 마무리되고 나면 숙소로 돌아가기 전 푸지게 장을 보고 돌아가는 것이 늘 하는 방식. 국내 지역 여행의 친구 하나로 마트에서 그 지역의 사람들이 지역 특산물 대신 오늘 저녁거리를 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어디서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나도 그 지역의 특산물, '꼭 먹어야 하는' 그런 것들 대신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고기, 김치, 쌈채소 같은 것들.

 요리를 좋아하고 또 해주길 좋아해서 요즘 요리는 보통 나의 몫이었지만, 고기를 굽는 것은 함께 다니는 나의 짝꿍의 몫이다. 우리 모두 가리는 것 없이 먹는 것을 좋아해서 같이 다니기에 아주 즐거운 짝꿍이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고기 특화형이다. 엄청나게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굽는 유튜브 동영상을 좋아한다. 요리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특히 고기 굽기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집게를 내어준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열심히 구워도 그들의 취향을 꼭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고기에 늘 진지하고 신중한 그의 모습이 귀엽고, 또 구운 고기는 적당히 육즙이 살아있어 풍미가 훌륭하다.  너무 맛있다며, 맛있게 요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니 그가 머쓱해하며 말한다. '에이,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나.

  삼겹살을 굽는 것은 요리일까, 아닐까? 요리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요리: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멋진 말로 표현하자면 시즈닝을 하고, 굽고, 잘라서 내는 과정이 있으면 그래도 엄연히 요리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조리 과정이 단순하여 요리에서 제외하기에는, 또 양식의 그릴 요리들이 떠오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비롯한 양식 식당에 가면 가장 비싸고 중심이 되는 요리는 그릴 류 요리이다. 고기의 원재료가 다른 재료보다 비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릴 요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확실히 한식과는 다르다. 머나먼 옛날 드라마 '파스타'에서 서유경은 주방 보조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재료의 밑손질과 설거지를 담당하는 그녀의 자리는 셰프와 가장 먼 맨 끝 자리. 그 이후로는 (꼭 또 중요도의 순서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전채 파트와 파스타 파트가 있고, 서유경과 가장 멀고 셰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부주방장의 그릴 파트가 있다. 셰프를 제외하고 주방에서 가장 실력이 있는 자가 스테이크를 굽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원재료 그 자체의 풍미를 살려서 굽는 조리 과정은 양식의 주요 조리 기법이다.

 그러나 한식에서는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그릴 문화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어하는 이유는, 재료가 조리되지 않은 채로 제공되고 조리대 그 자체가 손님의 상으로 이동해버렸다는 점이다. 손님 상과 셰프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양식의 문화에서는 꽤 충격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의 경계는 허물어버리고, 심지어는 제공받는 자가 또 제공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손님이 직접 조리 과정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식재료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 말고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의 전문성에서 오는 기술력과 노력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의미도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릴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가 하락한다. 랜덤으로 가게를 방문하는 아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굽기'이다. 사실 한식에서는 어떤 재료를 굽기만 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요리라고 인식하지는 않는 듯하다. 깊은 맛의 양념이 가미되거나, 정성이 들어간 어떤 조리 과정이 포함된 것들, 어떤 완전히 새로운 가치가 가미된 것을 고급 요리라고 부른다. 또, 한식의 기본은 푸짐함이므로 사실상 하나의 재료가 그 맛 만으로 한 식사의 승부를 보기는 힘들다. 한정식 집의 상차림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무튼 불에 조리된 것을 먹고, 그것은 맛있고, 늘 손에 닿을 듯 친근하고,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삼겹살 하나를 굽더라도 얼마나 많은 철학과 고민들이 담겨 있는지, 내 짝꿍을 비롯하여 내가 집게를 순순히 넘겨주는 그 사람들은 마음 깊이 알 것이다. 불판의 온도, 삼겹살의 뒤집는 타이밍과 횟수, 자르는 크기, 함께 굽는 가니쉬의 종류 (이를테면 김치를 함께 올릴 것인지 말 것인지) 같은 것들에서 그들은 가장 최적의 맛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엄청나게 사회 문화적인 행위이나 또 개인적인 행위다. 내가 행복하면 장땡이란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훌륭한 요리사다, 이 세상의 모든 프로 그릴러들이여. 굳은 심념을 가지고 무소의 불처럼 구워라. 당신이 가장 좋을 대로.

 사실 이 포스트는 그 자리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글로 옮기기만 한 것이다. 고기를 촉촉하고 맛있게 구워주고, 이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 짝꿍에게 감사를.

 

기다림의 순간은 언제나 그렇지만 코앞에서 기다리니까 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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