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좋은 딸’이라는 가면을 벗고

by 류하정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면, 나는 곧장 다시 집을 나섰다.


집 안은 분명히 내 명의로 계약한 공간이었고, 생활비와 렌트비도 내가 전부 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감정을 억누르며 견뎌야 하는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걷는 동안,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잘하고 있어. 멈추지 마. 이건 도망이 아니라 생존이야. 그리고 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금 가고 있어.’


나는 과거에도 살아남기 위해, 단단해지기 위해, 몸으로 부딪쳐온 사람이었다. 화장품도, 보험도 팔았다.
낯선 사람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꺼내고, 거절을 견디고, 눈치를 살피며 설득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자존심이나 체면은 사치였고, 부끄러워할 시간도 없었다.
그때의 절박함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고, 생존의 본능은 내가 낯선 땅에 다시 발을 내딛는 힘이 되었다.


해외라는 새로운 환경은 생각보다 더 많은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국제학교는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고, 학교 행사, 학부모 모임, 개인 상담 등 참여해야 하는 활동이 예상보다 많았다.


게다가 스쿨버스 시간은 맞지 않았고, 아이의 영어 보충을 위해 보내는 학원은 차량 운행조차 되지 않아 모든 등하교는 내 담당이었다.

나는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중간중간 도서관에 들러 글을 쓰고 책을 기획했다.
하루 중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고, 모든 활동은 결국 하나의 이유로 수렴됐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글을 써서 수익을 만들어야 했고, 그 글들이 강의로 연결되어 또 다른 수익이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하루 한 편만 쓰자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잠을 쪼개며 하루 세 편씩 글을 올렸고, 그 안에 생존의 가능성을 담았다.
절박했고, 간절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이 결국 문을 열었다.


블로그를 통해 강의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 2회 저녁 온라인 강의를 열게 되었다.
아이를 재운 뒤 조용해진 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마이크 앞에 앉아 나는 또 다른 나로 변신했다.
화면 너머에 있는 이들에게, 나처럼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마음이 가벼운 날은 없었다.


늘 ‘어떻게 하면 더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몸은 고단했고,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았으며, 머리는 늘 무거웠고, 쉼이란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집 안은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고, 오히려 숨을 참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차라리 도서관에 있으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 나를 위한 공간.
그곳에서만 나는 나일 수 있었다.
그런 내 곁에서, 동생은 늘 아침이면 산책하고 오후면 수영하고, 이후에는 영어 공부한다고 하면서 누웠다 일어났다를 무한반복하며 편안하게 안방에 누워 있었다.


함께 일하자고 수없이 말했고, 너도 수익을 만들어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나랑 안 맞아.”
“하기 싫어.”
“생각 안 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글도 써줄게, 홍보도 도와줄게. 커리큘럼만 짜봐.”
몇 번을 밀어붙인 끝에 겨우 수업 공고 하나가 올라갔고, 운 좋게 한 명의 수강생이 생겼다.
그 수업이 이어져 조금씩 늘어갔지만, 곧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됐다.


동생은 “멀리 수업 가야 하니까”라며 내 차를 요구했다.
나는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학원도 데려가야 했지만, 몇 번은 차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충전해 둔 통행카드는 바닥났고, 기름도 텅 비었으며, 그 어떤 말 한마디도 돌아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불편함을 표현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꼭 뭐 하나 해주고 나면 고맙다는 말 들으려 하는 것 같더라?
가족인데 뭐가 고마워? 난 언니한테 고마운 거 없어.”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필이면 그날은 아이 학원에 함께 다니는 이웃 아이를 태우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은 네가 택시 타야 할 것 같아.... 그 집 엄마가 둘째를 봐야 해서, 간식을 싸서 보냈고 큰 아이는 잘 부탁한다고 했거든....”

내가 조심스럽게 설명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 집 엄마 웃기네? 자기 애를 지금 누구한테 떠넘겨?
언니가 맨날 차 태워주니까 이번엔 그 엄마한테 택시비 내라고 해. 한두 번쯤은 그렇게 해도 돼.”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이곳에 내가 온 이유는, 아이의 학업 때문이었다.
학원 또한 강요가 아닌, 아이가 스스로 “학교 수업을 더 잘 따라가고 싶다”라고 말했고, 그 믿음을 따라 주 2회 직접 데려다주며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에게는 그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카가 불편하든 말든, 자신이 편하게 수업 가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오전 내내 누워 있고, 일주일에 고작 세 번, 한 시간 수업하는 게 전부였다.
그 수입으로는 월세도, 전기세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세도 내가, 렌트비도, 수도세, 전기세, 인터넷비, 하다못해 휴대폰 요금까지도...

전혀 보태는 게 없었고 내가 1주일치 장 볼 때 겨우 몇 만 원 보태는 게 전부였다.


“너도 어른이니까 단 10만 원이라도 보태봐. 책임감을 가져야지”라고 말하자, 그녀는 통장 잔고를 내밀며 소리쳤다.

“돈 없다고!!!”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다르지 않았다.

동생은 돈을 벌기 싫다며 누워 있었고, 엄마는 “한국에서 나가는 돈이 많다”며 생활비를 더 요구했다.

심지어 본인이 기분 안 좋으면 내 아이가 있는 앞에서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미친 x, 또라이같은 x"이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아이가 학교 가려고 양치하고 있을 땐 본인의 화나는 감정을 표하기 위해 아이생일 후 붙여놨던 풍선을 칼로 터뜨렸다.


티비장을 발로 걷어차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고

내가 나가라고 하자, 돈 1000만 원 주기 전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했다.

이 생활이 싫어서 돈을 주게 되면 고맙단 말 없이

그저 받아서 쓰는 한 달분의 종잇장 같은 돈이 될 뿐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매일 양옆에서 쪼이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매번 결정적인 순간은 그들의 말 한마디였다.

“우리가 천만 원 빼서 너 데리고 왔잖아.
그 천만 원이랑 비행기값 주면 나가줄게.”


내가 실제로 받은 건 보증금 400만 원, 비행기값 100만 원.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당하게 천만 원을 요구했고, 주면 나가겠다고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한 가지 감정이 분노보다 더 강하게 솟구쳤다.

결심이었다.

그래, 주겠다!
이건 돈이 아니라 내 인생을 되찾는 비용이다.
자유를 사는 값이라고 생각하자.
왜 천만 원을 줘야 하냐고 묻는 대신, 그 돈을 벌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감정 착취와 정서적 폭력의 고리를 끊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이 끈을, 내 손으로 반드시 끊어낼 것이다.

500, 700, 1000만 원.
무조건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내고, 나를 지켜낼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강의를 만들고,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잠은 내게 사치였다. 잘 시간 줄여가며 일했고

밥 먹는 대신 셰이크로 대충 때우면서 일했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기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나는 더 이상 '좋은 딸'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착한 사람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그 가면을 벗고, 진짜 내 삶을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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