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나는 왜 혼자 있는가 편안한가

by 류하정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것들을 조용히 내 안에서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그저 말없이 침묵했고, 어떤 날은 눈물 한 방울로 하루를 견뎠으며, 또 어떤 날은 이를 악물고 해야 할 일을 밀어붙이는 결심의 날이기도 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집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의 나는 늘 누군가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며 살아왔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나의 감정을 꾹꾹 눌러 삼켰고,
내 마음은 언제나 마지막 순서로 밀려나 있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엄마인데’, ‘그래도 내가 언니인데’라는 말들은,
항상 내 감정보다 더 먼저 나를 규정했고, 그 말들 앞에서 나는 너무나 익숙하게 나 자신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고, 살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하루의 구조였다.

예전의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면, 가족의 요구와 집안일, 무거운 공기와 눈치로 뒤덮인 ‘해야 하는 일’들의 목록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었고, 내 하루는 늘 남의 것이었다.
내 시간은 늘 누군가의 불편을 대신 감당하는 데 쓰였고, 나는 매일매일 그 안에서 지쳐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온 뒤, 나는 가장 먼저 내 시간을 나에게 배분하기로 했다.
커피를 내리고, 책상 앞에 앉아, 나를 위한 글을 쓰고, 그날 하루의 감정과 다짐을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30분.


처음엔 그 30분이 사치처럼 느껴졌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중심에 두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습관이 쌓여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하루 속 일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


이 작은 변화는 인간관계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심스레 조율했고,
말 한마디도 삼키며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써왔다.
특히 가족 안에서는 더욱더 그랬다.


감정을 표현하면 “예민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경계를 세우면 “왜 이렇게 각박하냐”는 비난이 돌아왔으며, 나는 그런 말들 앞에서 또다시 마음을 접고 물러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들은 내가 그들의 편의에 맞춰 살아주던 사람이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할 때, 불편해진 그들이 보이는 반작용이라는 것을.


그건 나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내 입장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정한 루틴을 우선할 거야.
내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


그 말에는 어떤 공격성도, 분노도 담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불편해했고,

“너 정말 많이 변했다.”, “차가워졌다.”는 말을 내게 던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예전처럼 아프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인정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하는 방식도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더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블로그를 채우고, 콘텐츠를 만들고, 강의를 기획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그 일들이 생계였던 것도 맞지만, 사실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보이지 않는 강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강박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속도보다 방향을, 결과보다 과정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고, 많이 쓰는 것보다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글을 쓰는 일이 더 소중해졌다.


억지로 끼워 맞춘 강의가 아닌,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업을 만드는 일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의 일은 소모가 아닌 창조의 리듬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이 변화는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확실히 드러났다.
예전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고, 아이의 말에도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감정적으로 고갈된 채 아이를 대하면,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 짜증이 먼저 올라왔고,
결국 그건 또다시 ‘엄마로서 부족하다’는 자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아이와의 시간도 달라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여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작은 변화에도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오늘은 기분 좋아 보여요.”

그 한마디가 가슴을 찌르듯 깊이 들어왔다.


그래, 내가 나를 돌보면 아이도 나를 통해 편안함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물론 모든 날이 평탄하진 않다.
여전히 불안은 찾아오고, 때때로 흔들리고, 과거의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이, 나를 위한 게 맞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누군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감정을 스스로 보호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쓰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제 내가 나를 위해 하루를 설계하고 있고, 나를 중심에 둔 삶을 다시 조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은, 내 인생의 방향을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로 돌린 결과다.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는 지금, 나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6장.‘좋은 딸’이라는 가면을 벗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