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다정함이 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

by 류하정

선택이라는 것은 결코 그 순간의 결심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그날 이후, 내 삶은 드라마처럼 반짝이며 변하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 주는 기적 같은 반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 듯 보였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 속에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나의 삶의 구조를 다시 짜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고 느렸지만, 그 작은 틈 하나하나가 내가 ‘나’를 다시 중심에 놓는 연습의 시작이었다.


아침의 일과는 겉으로 보기엔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이를 깨우고, 간단하게 아침을 차리고, 물병과 숙제를 챙기고, 시간에 맞춰 옷을 입히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그 반복되는 루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상을 대하는 나의 감정은 전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나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위에서조차 이미 하루를 버텨야 할 긴장과 압박으로 숨이 막혔고,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엄마와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내게 기대할 말과 행동을 미리 떠올리며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하곤 했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탈진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아침의 길 위에서, 조금 다르게 서 있으려 애쓰고 있었다.
맑은 아침 햇살이 고맙게 느껴졌고, 아이와 주고받는 짧은 대화 속에서 뜻밖의 웃음이 피어나기도 했다.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길가의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이 순간만큼은 내 것이다’라고 조용히 다짐하듯 생각했다. 나는 그 짧은 걸음에서도 내가 나의 하루를 회복해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변화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조용하고도 단단한 회복의 징후였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펼치는 것은 업무 노트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적어두는 작은 메모장이었다.
그날 나에게만 유효한 조용한 약속 하나씩을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오늘은 글을 억지로 쓰지 않기.’


‘마음이 다쳐도 바로 꺼내지 않고, 조용히 내 안에 앉혀보기.’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지금의 이 순간을 살아있다고 느껴보기.’


이 문장들은 어떤 성과를 위한 다짐이 아니라, 내가 나를 중심에 두기 위해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하나씩 쌓아간 약속들은, 내가 다시 글을 쓰고 나의 언어를 정리하는 데 자연스러운 힘이 되어주었다.


예전에는 정보만 전달하던 글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을 담는 글이 되었다.
콘텐츠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루틴이자, 지워졌던 나의 존재를 조용히 다시 꺼내는 작업이 되었다.


가족과의 관계에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내가 예전처럼 반응하길 기대했고, 내 감정보다 그들의 불편함을 먼저 배려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기대에 자동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 내가 무너지는 대신, 이제는 내 평온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썼다.

동생이 말끝마다 툴툴대거나, 엄마가 반복적으로 같은 요구를 해올 때,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응하거나, 참고 참다 결국 터뜨렸을 감정들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감정적 거리를 두었다.


필요한 말은 했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입속에 남겨두었으며,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 했던 반응들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새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일의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조건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하루에도 여러 편의 글을 올리고, 무리하게 강의 일정을 채워 넣었다.
늘 마음은 초조했고, 한 달 뒤를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은 내 일상을 몰아세우는 채찍이 되었다.
그렇게 일하며 나는 점점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나는 그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이 내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글을 쓸 때도 단지 트래픽을 위한 키워드보다 내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문장을 중심에 두고 다듬기 시작했다.


강의 역시 수익을 위해 무작정 늘리는 방식이 아닌, 나의 경험과 진심이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밀도와 깊이를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이건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이야’라는 확신이 들고, 그 확신이 다시 다음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와의 시간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기에 아이의 말에도 온전히 반응할 수 없었고, 작은 떼쓰기에도 짜증이 먼저 올라왔으며, 그 후에는 늘 자책과 죄책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 감정을 감추기 위해 과잉된 반응이나 의무적인 행동으로 관계를 채우려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나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아이와의 시간도 다시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이면 아이와 마주 앉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듣고, 눈을 맞추며 웃었다.
그 짧은 시간들은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녹여주었고, ‘엄마로서의 나’, ‘여자로서의 나’, 그리고 ‘사람 류하정’으로서의 나를 다시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소중한 다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는 어느새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며칠 뒤, 아이는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요즘은 진짜 웃는 것 같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순간 숨을 멈춘 듯 멍해졌다.


예전의 나도 웃고는 있었지만, 그 미소는 어디까지나 의무와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눈동자 깊은 곳에는 늘 피로와 무기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 웃음은 진심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표정이었고, 어쩌면 아이 역시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함께 웃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아이였다.

작가의 이전글7장 나는 왜 혼자 있는가 편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