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경계를 세운다는 건 사랑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by 류하정

어느 날 아침, 나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누구를 깨우지도 않았고, 마지막 인사나 변명 같은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밀고 나갔을 뿐이다.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끝까지 부드럽게 당겼고, 손잡이에 닿은 손끝에 남아 있는 체온조차 흘려보내듯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용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짐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많지 않았다.

몇 벌의 옷, 늘 들고 다니던 노트북과 메모장 한 권,

그리고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손때 묻은 머그잔 하나와 텀블러 하나.

이 작은 짐 속에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담아 나는 아이와 함께 떠났다.


‘가볍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은 이제 더 이상 생각만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그 순간의 담담함은 오히려 나를 다잡는 힘처럼 느껴졌다.

내가 새로 구한 집은, 겉보기에는 결코 넓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아이와 나 단둘이 살기에는 더없이 넉넉하고 안정감 있는 공간이었다. 큰 방이 하나 개 있었고, 거실과 주방은 작지만 분리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작은 화장실이 두 개로 나뉘어 있어 아이와 내가 서로의 생활 리듬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구조였다.


사실 이 집은 예전에도 한 번 봤던 곳이다.

그때도 위치가 마음에 들었고, 구조도 기능적으로 뛰어났지만 엄마와 동생이 함께 살기에는 좁을 것 같다는 이유로 그들은 반대했고, 결국 나는 그 의견에 맞춰 지금까지의 넓은 집을 선택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이와 단둘이, ‘우리 둘만의 삶’을 상상하며 다시 그 집을 보러 간 순간, 나는 그 공간이 왜 그토록 나를 끌어당기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거실 바닥을 스치며 들어왔고, 주방은 작지만 따뜻했으며, 아이는 거실 한쪽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했다.


“엄마, 우리 여기에서 살면 안 돼? 진짜 좋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직감했다. 이 공간은 단순히 큰방 하나와 주방이 있는 집이 아니었다.

누구의 기분을 살필 필요도 없고, 감정을 조율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도 없으며, 무엇을 하든 나와 아이만의 리듬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우리만의 삶의 무대’였다.


심지어 그 변화는 경제적인 지표로도 확연히 드러났다.

기존의 넓은 집은 넷이 살기에 충분했지만, 그만큼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고정비용도 컸다.

월세는 이번에 이사 온 집보다 40만 원가량 더 비쌌고, 전기세는 심각할 정도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야만 했던 그 집에서, 한 달 전기세는 27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치솟았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덥지 않았지만, ‘덥다’는 누군가의 말에 에어컨을 켰고, 결국 냉방비의 모든 부담은 내 몫이었다.

그런데 새 집에 이사 오고 처음 받아 든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4만 원대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한 번 보고, 다시 보고, 세 번쯤 고개를 흔들며 고지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이제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시작됐다는 게 실감 났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나는 ‘내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중심에 나를 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인 숫자와 체감되는 평온 속에서 배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온이 오기까지, 나는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야 했다.

내가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한 그들은 처음엔 “나가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내가 정말 움직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 자신들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다시 서로 결속하고, 나를 집 안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던 한국의 이모와 우리 엄마는 다시 통화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마, 동생, 이모 셋이서 스피커폰을 켜고 마치 그 공간이 자기들 소유인 양 시끄럽게 웃고, 말하고, 아이 앞에서도 시선을 과시하며 내 공간을 점령하려 들었다.

심지어 아이에게까지 과장된 친절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 밥 먹었니?”, “숙제는 다 했어?”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연기된 말투.

나는 듣는 것조차 괴로웠다.

아이조차 “그런 말은 그냥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형식적인 친절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우리 둘은 이미 오랜 시간 속에서 충분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이면 내 동생은 거실 한가운데 앉아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영어로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자신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엄마들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저렇게 영어 잘하시는 분이… 직장은 왜 안 나가세요?”

“그럼 영어는 왜 배우는 걸까요?”


나도 답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미국 드라마를 보고, 화상 수업까지 들으며 실력을 키워가지만 정작 그녀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말은 이제 어떤 변명도 되지 못했고 결국 나는 결심했다.

이건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라고.

이 모든 감정과 구조에서 내가 먼저 빠져나오는 것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더 이상 그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더 좋은 집에 남아 그들을 내보내려고 애썼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이사 공간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등을 떠밀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이 나가고 싶지 않아 버티는 상황에서 굳이 싸워가며 이 공간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롭고, 단단한 선택이라는 걸 나는 어느새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이 말하는 ‘천만 원’은 이미 내가 이 집 보증금으로 낸 금액이었고,

이번 달 월세까지도 선불로 낸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향한 경제적 책임마저도 넘겨줄 수 있었다. 남은 건, 그들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그들은 늘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책임을 지워주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이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까’ 걱정하며 또 한 달, 또 한 달 생활비를 보내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건 또 다른 착취의 시작이고, 끝없는 고통의 되풀이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감정을 정리했고, 관계를 정리했고,

무엇보다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을 위한 생존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건 결코 도망이 아니다.

회피도 아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만든 가장 성숙한 형태의 경계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경계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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