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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Sep 02. 2022

마음을 만나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 

"너 가스 라이팅이 무슨 뜻인 줄 알아?"

먼 곳에 있는 친구와 통화 중에  그녀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아, 그거~ 나도 전에 궁금해서 찾아봤지. 그거 어떤 연극인가 책에서 비롯된 건데 가스로 켜지는 라이트가 있었는데 아내가 그게 흐려서 남편에게 불빛이 흐리다고 말을 했는데, 남편이 아니야 당신이 잘못 본 거야. 그렇게 말을 반복해서 결국 아내가 내가 잘못 본건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뭐 그런 거래. 그래서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옭아메서 세뇌시키는 그런 행동을 '가스 라이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그래 너는 알고 있네. 있잖아 얼마 전에 애들이랑 얘기하다가 가스 라이팅이란 말이 나와서 내가 네가 말한 거랑 거의 똑같이 말했어. 

그랬더니 신랑이 아니라고 우기는 거야. 나더러 틀렸다고. 

그래서 내가 네이버 검색해서 알려줬잖아. 근데 있지.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  이제는 내가 안 진다. 하하하"

은아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느꼈던 것들을 털어놓는다. 


어느덧 결혼 생활 2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그녀가 요즘 점점 뭐가 각성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하며 아이 키우고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그녀의 보살핌이 덜 필요해지는 시점이 되긴도 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고 앞으로 그녀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가까운 이로부터의 말은 우리의 귀를 팔랑귀로 만들기 충분하다. 그러기에 연인 사이에 가족 사이에 가스 라이팅이 자연스럽게 아주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어느 전문가는 말했다. 


오랜 기간의 연애를 지나면서 나도 어딘가 가스 라이팅을 당하고 변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편의나 이득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다른 면으로 보면 편의나 이득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이건 네가 잘못한 거야 ' 

'네가 예민한 거야'식의 말로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가스 라이팅을 하는 경우가 파다한 것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정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다른 패턴, 습관 등을 가진 사람들을 '쟤는 좀 이상한 것 같아.'라고 말하며 반대편의 무리로 던져버린다. 


내가 볼 때, 이러한 패턴은 집단주의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더 심하지 않나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이 한 창일 때 모두가 빨간 레드 데빌 티셔츠를 입고 '대~한 민국'을 외쳤다. 

그때, 그 티셔츠를 사지 않고 그 어떤 빨간 티셔츠도 입지 않던 나에게 몇몇은 이렇게 말했다. 

"다들 하는데 너도 하나 사 입어." 라며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면, 

연인 사이나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에 '가스 라이팅'이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글의 시작점이다. 


얼마 전, 나에 대한 평가 아닌 평가를 들었는데 그동안 들어왔던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상대방은 나에 대해 이미 다 간파한 것처럼 말을 늘어놓았지만 나를 십 년 이상 아는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 이야기를 건넨 이 또한 자신의 어떤 취약점으로 인해 나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기 어렵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전문가에 따르면 말에는 항상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이 섞여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나의 어떤 문제로 인해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릴 시절엔 부모나 선생님의 체벌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엄마의 체벌이 싫어 100m 질주를 하면서 도망갔던 기억이나, 

학창 시절  자습시간에 반 아이들이 떠든다는 이유로, 반장이었다는 이유로 불려나가 학생 주임에게 불려 나가 따귀를 맞았던 기억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걸 보면 아마도 나의 내면에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장난이건 진심이건 누군가가 때리는(?) 행동을 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거부하는 성향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런 행동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처럼, 나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이 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단지 그동안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해 보지 않았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런 고민들을 하지 않고 살아갈 거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랬고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노력해 본 적이 없었다. 




때때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다. 

이혼을 결정할 때 많이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자아성찰' 즉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었고

마음을 만나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더 들어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욕구와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고 어떤 이들은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특히나 이런 표현에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잘 낸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남자는 울면 안 된다.'처럼 아니면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처럼 성별로 그 역할이나 행동영역을 제한하고 경계를 만드는 '가스 라이팅'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빈 둥지 증후군'처럼 나의 엄마 시대의 분들이 겪는 문제들이 이런 관념들로 만들어진 가스 라이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ENS)이란 애정의 보금자리인 가정에 빈 둥지만 남고 자신은 빈껍데기 신세가 됐다는 심리적 불안에서 오는 정신적 질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자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면 된다는 것. 

그러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고 나면 엄마들이 느끼는 그런 공허함....


또 한편으론, 연인 사이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하여 상대방에게 주입함으로써 자신의 판단이 옳고 너는 잘못됐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계속 강요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제단 하려는 경우도 많다. 


이런 미묘하게 이루어지는 가스 라이팅을 피하기 위해서 우린 무엇보다도 마음을 만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우선 나 자신을 잘 알고 가치관을 견고히 함으로써 어떤 주입이 들어올 때 그것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친구 은아가 했던 말 중에 뇌리에 박혔던 말이 있었다. 

"네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진짜로 그런 거야."

아마도 오랜 시간 그 느낌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전문가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이런 느낌이나 감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그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생각이 몰입되어 '아니야, 아닐 거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라며  그 신호들을 간과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 붙인 말이 참...

"그래서 여자들한테 그 말이 있는 거 같아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처럼 결국 여자들이 상대방에 동화되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사랑하게 되면 닮아가기도 하니까요. "


이 말을 듣고 나서 무엇보다도 흔들림 없는 나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 가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잃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이를 만나는 것이 건강한 관계 형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이 질문을 던지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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