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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l 29. 2022

뒷담화 (Gossip)

너와 나의 거리두기 

* 뒷 담화 : 남을 헐뜯는 행위, 또는 그러한 말.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쩔 땐 내 앞에서 그 사람의 뒷담화를 실컷 털어놓은 사람이 막상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었던이 앞에서는 웃으며 안부를 묻고 밥을 먹자며 약속을 한다. 

또 한편에선 인사권을 가진 상사에게는 할 말을 못 하지만, 만만하다 여겨지는 상대는 무참하게 도마 위에 올려놓고 다져버린다. 그 상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도 여지없이 도마 위에 올려진다. 


음..  예전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대인 관계가 좋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가식적인 직장생활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참이었다.

아마도 몇 번의 상처 이후에 변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에게 편하다 못해 막말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을 그 자리에서 반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겨버린다. 

대신 그 사람을 피하거나 다시 만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제와 보면 결코 좋은 반응은 아녔단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가 편하다는 이유로 예의 없이 말할 때가 있다. 그 말의 이유는 '너를 위해서야'라고 하지만 결국 그 위한다는 말 자체가 더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못하는 게 아닐까?

 이런 말을 몇 번 듣고 나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점점 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를 깊게 만나는 게 좀 두려워지기도 한다.  또 아마도 그 자리에 없는 이를 뒷담 화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자리에선 내 험담을 하겠지 싶어여서 일까?  퇴근 후 어울려 만나봐야 다른 이의 험담만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과의 자리가 끝나고 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러다 보니 관계 지향적 사회관 계보다 업무적인 관계를 맺으려 점점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게 되어간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 발을 내딛고 난 이후에 만난 이들과의 관계 유지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어려워진다는 걸 느낀다. 특히나 직장을 옮겨보지 않은 이들은 다르겠지만 몇 번의 이직을 한 경우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게 된 것 같다. 특히나 이번처럼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삼자를 통해 듣게 된 경우는 더욱 다가가기가 어려워짐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겉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선 '뒤에 가선 또 뭐라고 떠들어 댈까? 저 모습은 가식적인 모습일 테지...' 이런저런 상념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면 진실되게 그들의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짐을 느끼게 된다. 


 직장이란 곳은 원하지 않는,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들이 얽혀있는 곳이다. 

직장은 내가 선택한 곳이지만 이미 그곳에 있었던, 새로 들어온 이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안 맞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당연히 생각의 차이도 의견의 차이도 생길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르듯이 각자 다른 성향들이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중 의견이 맞는 이들은 무리를 짓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엔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나 아웃사이더가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리를 짓고 어울려 좋은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들과 다른 이들의 뒷담화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많이 봐서인가..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직장 이야기가 대부분이 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좋은 칭찬할 만한 덕담은 잘하지 않는다. 그저 불만과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이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집단주의를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통이 필요한 사회생활에 점점 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된지도 모르겠다. 


이런 어려움을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때 친구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 같아. 그만큼 어려운 게 직장생활 같아.'

  

 



예전에 어느 잡지에서 '뒷담화'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직장 생활 후의 험담은 직장 내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글이었다. 

그 말에는 크게 동감한다. 말로 털어내고 나면 어느 정도 후련해지는 기분이 드니까..


하지만, 더 나쁜 것은 그 말을 옮기는 자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 말을 옮기는 자들은 아둔하거나 아니면 자신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보았다. 

 말을 옮기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말을 옮겼을 때의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거나 자신은 너보다 나아라고 생각하니 충고하듯이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말을 전달받았을 때 사실은 험담을 한 사람들보다도 그 말을 전달하는 이를 실은 더 멀리해야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가 김창옥 씨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사회에서는 너무 가족을 따진다. 너무~~ 가족이란 이유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차라리 예의와 매너를 지켜라'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직장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해보면 좋겠다.  

일로 맺어진 관계이니 서로 예의와 매너를 지키면서 각자 맡은 일을 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충돌은 개인적인 이유가 포함되지 않는 것일 뿐이니 그 일이 끝나고 나면 툴툴 털어버리면 좋겠다.


  

'그냥 너답게 너의 색깔대로 살아가면 돼. 그런 말들에 너무 휘둘리지 마. 그런 말들까지 신경 쓰면서 살아가면 네가 너무 힘들 거야. 사람은 각자 달라서 내 마음에 흡족하긴 어려우니까. 이래도 저래도 반드시 불만찬 이들은 생기기 마련이야.  '


아껴주는 이로부터의 격려와 위로가 담긴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이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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