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민준

by HeeSoo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희영은 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언제 그곳에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또한 서준과 함께 했던 그날 밤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희영은 용기를 내어 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나와 헤어지고 여행은 어땠나요? 저는 그 뒤 로마여행을 잘 마쳤고, 무사히 한국에 잘 돌아왔어요. 남은 여행 즐겁게 마무리 잘하시고 기회 되면 한번 또 만나길 바라고 있을게요.

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이 흘렀지만, 서준에게서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희영은 서준이 한국에 돌아와 바빠서 그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그에게서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심 그와의 재회를 기다렸던 희영은 점차 실망감이 들었고 다시 혼자가 된 느낌에 외로움이 커져갔다.


"그러게, 아직도 답이 없어?" 선영이 물었다.

"응,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희영이 답했다.

"그렇진 않을 거야. 아마 한국 돌아와서 바쁘거나, 어쩌면 여행하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해외여행인데 별일이 다 있을 수 있잖아.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마. " 선영이 희영을 위로했다.

이혼 이후에 희영은 자존감이 좀 낮아진 상태였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행에서의 설렘으로 기대했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 다시 부정적인 감정들이 희영을 엄습해 오고 있었다.

선영이는 이혼 후 힘들어했던 희영의 모습을 모두 보아 왔기 때문에 그런 그녀를 걱정했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려고 일상 얘기로 화제를 돌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희영아, 그러지 말고 너도 다른 모임 같은데 나가서 사람들이랑 어울려봐. 혼자 있는 시간도 좋긴 하지만 사람들 만나서 맛난 것도 먹고 술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고. 혹시 아니 거기서 다른 인연을 만날지?! "

"ㅎㅎㅎ 어떤 모임?" 희영이 물었다.

"응, 내 직장동료가 영어스피킹 연습을 하려고 나가는 모임이 있는데 너도 영어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하고 그러면 좋잖아. 그러니 한번 나가봐~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고 연락 줄게."

"그래, 알았어~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희영은 막연히 서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보다 이 편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새로운 뭔가를 시작한다는 생각이 의욕이 샘솟는 걸 느꼈다.

'이긍,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한다니 또 눈이 초롱초롱 해지는 구만.' 희영이에 대해 잘 아는 선영이는 그런 희영이를 바라보면서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차라리 모임에서 다른 남자나 만났으면 좋겠다. 한 달씩 연락도 없는 놈 말고.' 선영이 생각했다.



선영의 도움으로 희영은 앱을 깔고 영어 스피킹 모임에 가입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는 것이니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았다.

첫 모임을 나간 날 희영은 그녀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는 자신을 '민준'이라고 소개했다. 희영은 영어를 잘 구사하는 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파마머리에 웃는 얼굴이었지만 말도 많지 않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민준의 태도에서 희영은 그가 조용하고 내성적인 타입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필리핀에 좀 오래 있었다고 했다. 필리핀에 가본 적이 없는 희영은 자연스레 그에 관해 질문을 하게 되었고, 대화를 하다 보니 민준에게도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있는 재밌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특이한 헤어 스타일도 그렇지만 희영은 민준이 참 독특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그녀보다 네 살이 많았고 결혼 경험이 없는 싱글이라고 했다. 자연스레 희영은 자신을 돌싱이라고 소개했다. 그것에 대해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민준은 희영처럼 여행을 좋아했고 특히 그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필리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연스레 여행얘기를 나누다 보니 희영도 그동안의 여행이야기, 최근에 갔던 유럽 여행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유럽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희영은 서준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졌다.

'이름은 비슷한데 참 느낌이 다르다. 한 명은 백자면 한 명은 청자 같은 느낌이네~'

그때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영 씨, 혹시 술 잘해요?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전 다 잘 먹어요. 술도 적당히 마실 줄 알고요."

"그럼 다른 모임에도 나와보지 않을래요. 스피킹 모임 말고 다른 친목모임이 있는데 가끔 사람들이랑 맛난 거 먹으면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아마 덜 외로울 거예요. 또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까운 근교로 바람 쐬러 가거나 여행도 갈 수 있고요. 희영 씨도 혼자라고 했으니 한번 나와봐요." 민준이 그녀를 그의 다른 세계로 초대했다. 이야기를 듣던 희영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혼자 있는 시간에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하는 것도 매일 하다 보면 지루해지기도 하니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요. 그럼 알려주시면 가입하고 다음에 나가 볼게요." 희영이 대답했다.

민준은 희영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고 둘은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럼 내가 집에 가서 메시지로 초대할게요. 다음에 함께 나가봐요." 민준이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희영과 민준은 밝은 미소를 지었고 그 둘의 맑고 밝은 면이 서로 잘 어울리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참, 어쩌다 보니 비슷한 이름의 남자를 두 명이나 알게 되었네. ㅋㅋ 너무 웃기다. ' 희영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참 재미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희영의 머릿속엔 서준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새로 나타난 민준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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