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교회에 딸린 유치원에 다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연극 공연을 하였는데,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친구들은 살색 스타킹을 씨스루룩으로 입었고 나는 유치원 모자를 여러개 들고 무대에 섰던 것으로 보아 '모자장수와 원숭이'란 연극을 공연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때 받아쓰기는 늘 빵점이었고, 한글과 구구단도 2학년이 되어서야 익혔던 걸 보면 당시에 주인공격인 모자장수를 왜 나에게 맡겼을까 싶다. 하지만, 무대위에서 울지 않았던 것 같고, 연극이 끝나고 선생님한테 혼난 기억도 없는 걸 보면 그럭저럭 역할을 한 것 같다.
연극이 끝나고,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셨다.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있긴 있구나?',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이따금씩 운 걸 모르시나 보다'하며 잔뜩 설렜다. 포장을 뜯어 본 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보온도시락'이었다. 들떴던 표정이 순간 가라앉았던 것 같고, '역시 산타할아버지는 없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 어차피 사줘야 하는 거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가 사주신 거구나 싶었다. 눈이 번쩍 뜨여 다시 보니 산타할아버지도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어쩐지 홀쭉하더라... 그렇게 일곱살의 나는 산타클로스가 세상에 없다는 걸 그 당시치고는 일찍 깨달았다.
1987년 12월 25일, 그렇게 아버지는 일곱살인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온도시락을 사주셨다.
아버지는 강원도 홍천에서 나 태어날 때부터 하시던 악기사를 지금도 운영하고 계신다. 나 어릴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김건모, 신승훈, 터보, 룰라 등 인기가수들 덕분에 그 작은 동네에서도 릴테잎이며 CD, LP 등을 꽤나 많이 팔면서 장사가 잘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르신들과 바둑을 두시며, 담배와 함께 'USB에 담긴 뽕짝' 정도를 가끔씩 팔고 계시는 듯하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는 보통 격주로 아버지를 뵈러 간다. 기껏 주말에 갔으면 가게 청소도 좀 하고, 말벗도 되어드리고 하면 좋으련만 막상 집에 가면 그게 잘 안 된다. 한주의 피로감와 장거리 이동의 피곤함이 함께 몰려오며, 거의 잠만 자다가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한 번은 아침에 아버지가 가게에서 드실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플라스틱 통에 밥을 담고, 또 다른 통에는 김치와 반찬을 덜어 종이가방에 가지고 나가시는 모습이었다. "겨울에는 밥이 금방 식는데, 보온도시락 없어요?"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없다고 했다. 순간 '평소에 내가 많이 무심했구나...' 하며 미안한 마음에 낮에 동네에 나가 보온도시락을 사 왔다. 그리고, 다음날 보온도시락에 점심을 챙겨 나가시는 아버지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2020년 12월 25일, 그렇게 나는 여든이 다 되신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보온도시락을 사드렸다.
일요일 저녁 나주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묵직한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33년 전 마흔여섯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었던 보온도시락은 마치 부모된 당신의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여겼던 철없던 나였고, 마흔살이 된 지금의 나는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뒤늦게 보온도시락을 사드리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해드린 것처럼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온도시락'이라는 같은 선물을 다른 마음으로 주고받은 내가 너무 부끄러워져 차창에 비친 나의 모습에 머물고 있던 시선을 깊은 밤속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