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그해 여름 ep.1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쳤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동네 친구들은 집에서 출퇴근하며 군 복무를 하는 상근예비역도 잘 나오던데, 나는 군대를 가야만 하는 현역이 나왔다. 그리고, 카투사를 지원했다. 카투사는 미군부대에서 복무하면서 영어도 배울 수 있고, 여러모로 여건이 좋아 인기가 있는 군 복무 형태였다. 토익이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지원자격이 주어졌고, 추첨방식으로 선발하는 카투사 경쟁률은 2:1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재수를 하던 스무 살 때부터 가정 형편상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는데, 대학교 입학 후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를 많이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 자격증이나 고시를 준비할 여력은 부족했다. 2학년 2학기 때, 아버지께서 공인중개업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를 장난치듯 '복덕방'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기야 자기들은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는데, 같은 도서관에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나도 친구들처럼 공인회계사나 행정고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복학 후, 시험 준비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목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고향에서 과외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카투사는 1년 뒤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주중 과외는 저녁 7시부터 9시, 그리고 9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두 시간씩, 2번을 했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번의 과외를 했고, 주말에는 하루 5번씩 또 10번의 과외를 했다. 한 학생당 주중 1번, 주말 1번 해서 일주일에 2번씩 하면 되었기 때문에 동시에 10명의 학생을, 아니 과외 손님을 모시기도 했었다.
그렇게 과외 사업이 번창하던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주중 첫 번째 과외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과외할 때는 전화를 안 하시는데 무슨 일이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생수공장을 하시는 친구분 댁에 가서 주무시고, 차에 실어가신 빈 페트병에 생수를 담아서 내일 아침에 오시겠다고 하셨던 아버지셨다. "네, 아버지?" 하고 전화를 받은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내일 아침 아버지께서는 돌아오시지 못할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전화를 끊고서 과외를 계속하지도, 그렇다고 과외 집을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정지 화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