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의 그루터기

2022년 복지부 주관, 치매극복 희망 수기 장려

by 헤세Hesse

나주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SRT 기차 안이다. 이번 주도 야근과 회식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아버지를 뵈러 집으로 가는 마음만은 언제나 그렇듯 가볍다. 수서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동서울터미널에 갔다가, 1시간 정도 홍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내려서는 30분 정도 걸어가야 비로소 집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못 갈 날도 있을 텐데,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니 갈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금요일 밤, 그렇게 주말을 시작한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버지는 나와 함께 저녁을 드시려고 기다리고 계셨다. 식탁에 앉자마자 아버지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가게 장사가 안돼서 걱정이라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결혼은 안 할 거냐로 끝나는 늘 하시는 말씀이 대부분이다. 나 태어난 이후로 40년 넘게 아버지 장사 잘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식의 가벼운 말로 대화를 이어갔지만, 아버지의 일상에 근심과 걱정이 물들어있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결혼을 안 하고 있거나 못하고 있는 불효자인지라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식탁에 물 한잔과 약봉지 몇 개가 놓여있다. 심근경색으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으신 이후로 드시고 있는 아스피린 약과 기타 당뇨병, 비뇨기과 약 등이다. 저녁 드시고 30분 후에는 드셔야 하는 약을 안 먹고 계셔서 거실에서 TV를 보던 나는 안방에 계신 아버지께 약 안 드시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아이고 깜박했네. 요새 깜빡깜빡해서 큰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약을 드신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했지만, 요새 들어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에 신경이 쓰인다.


주중에는 함께 못 있으니, 아버지가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한 번은 강원대학교 병원 외래가 다음 주였는데, 이번 주인 줄 알고 춘천에 왔다며 “큰일이다.”라고 하시며 전화를 하셨셨고, 또 한 번은 농협 ATM에서 출금한 돈을 모르고 안 찾아왔던 일을 얘기하시며 “깜빡깜빡해서 큰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지금 하는 행동과 말에 집중해야지.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에 생각이 빠져 있으니까 그러죠.” 하면서 오히려 짜증 섞인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깜빡깜빡한다’, ‘큰일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에 ‘치매’를 검색해 보았다. 2018년 기준으로 이미 우리나라에 치매 환자는 제주도 인구보다 많은 75만 명 정도라고 한다. 치매를 조기에 치료하면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살다 보니 부모님의 초기 변화를 모르고 지나가서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 동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떨어졌다. 뜨거운 것이 눈물이었다. 치매는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은 다만 질병일 뿐이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외면하면서 아버지만을 나무라듯 대했던 것 같아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치매는 이제는 개인과 가족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며 ‘치매 국가책임제’가 2017년에 도입되었고, 치매안심센터가 예방부터 관리까지의 치매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홍천은 보건소는 있지만 아무래도 시골이라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홍천에도 치매안심센터가 있었다. 주중에 가야 하니, 올해 여름휴가 때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가게에 나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부족한 잠을 청하려는데, 점심 도시락 가방을 놓고 가셨다. 부랴부랴 챙겨서 따라 나갔는데 원래 걸음도 빠르신 데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셔서 한참을 뛰어가 소리쳐 불러 세웠다. 아버지는 정신이 없어서 큰 일이라고 말했지만, 연세가 드시면 다들 그러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라고 다독여 말했다.


일요일은 나주로 돌아가는 데 반나절은 걸려서 아침부터 서둘러야 하니, 토요일이 오히려 바쁘다. 여든 넘으신 아버지이시고 가게를 운영하시다 보니, 아무래도 집 정리까지 하시기는 어렵다.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다. 현관문 소리에 아버지가 들어오시는가 싶더니 아버지께서 깜빡하고 도시락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며 다시 다녀오시겠다고 한다. 내가 다녀오겠다고 하니, 아니라고 자전거 타고 금방 다녀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며 나가셨다.


한 5분 지났을까?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오토바이하고 사고가 났다고 하셨다. '아... 밤길도 어둡고, 아버지 급한 성미에 빨리 다녀오시려다가 사고가 났구나...' 나는 서둘러 나갔다. 마음이 불안했다. 아버지께서 혼자 계시다가 심근경색으로 실려 가셨을 때, 택시를 타고 강원대 병원 응급실로 가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다녀온다고 할 걸, 아.. 그놈의 도시락 가방...'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아져 사고 장소로 갔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크게 다치시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시는데 우회전하던 오토바이에 놀라 넘어지신 모양이다. 다행히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 태도에 기분이 나쁘셨나 보다. 날도 어둡고 놀란 마음에 오토바이 운전자 연락처만 받고 보냈다.


아버지는 타박상을 입으셨는지 조금 불편하게 걸으셨고, 나는 자전거를 끌고 함께 옆으로 걸었다. 조심하시지 그랬냐고, 아버지 차 타고 다니시라고 내가 홍천에 차도 놔두고 다니는데 왜 안 타고 다니시냐고, 얘기드릴까도 싶었는데 부자는 그냥 말없이 집으로 한 걸음, 한걸음 걸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연세도 있으시고 예방 차원에서 치매 검사를 한번 받아보자고 했다. 아버지께서 싫다고 하실까 봐 걱정이 앞섰다. 홍천 보건소 바로 옆에 치매안심센터가 있고, 검사비도 따로 안 드니 부담 갖지 말고 월요일에 나랑 같이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자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부장님께 전화했다. 월요일에 하루 휴가를 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부장님은 상황은 이해하시면서도 월요일에 주요 경영진 보고가 있어서 좀 곤란해하셨다. 어쩔 수 없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 내가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늘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같이 가면 좋은데 상황이 안되니까, 내일 월요일 되면 아버지 혼자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검사받으셔요. 뭐 어려운 거나 그런 거 있으면 저한테 전화하셔서 바꿔주시고요” 터미널 가기 전에 가게에 들러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나섰다. 왠지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런 마음을 아버지가 아실까 싶어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나를 거의 혼자 키우시다시피 하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서른아홉이셨다. 그런 내가 이제 마흔두 살이 되었으니,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드신 거다. 나의 성장 과정에서 안락한 울타리셨던 아버지다. 이제는 노인이 된 아버지에게 편안한 그루터기가 되어드리지 못하고 있는 아들인 것 같아 나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월요일 오전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아버지” 검사는 받으셨는지, 결과는 어떤지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30점 만점에 28점 맞았다”하고 말씀하셨다. 무슨 시험을 잘 본 것처럼 해맑게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핸드폰 건너로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 보라고, 아버지는 원래 머리가 좋으시고 바둑도 꾸준히 두고 그래서 괜찮으실 거라고...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건망증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요즘에 치매안심센터에서 운영하는 예방교실을 다니신다. 치매는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나가서 사람들 만나니까 의사소통도 되고 노인들한테 좋다고 치매안심센터 홍보대사라도 되신 것처럼 신나게 말씀하시곤 한다. 나는 다만 감사할 뿐이다. 아들로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부분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치매는 개인과 가족의 일이 아니라는 치매 국가책임제... 치매안심센터가 아버지와 나, 우리 모두에게 편안한 그루터기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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